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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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문제 / 손정모
인구감소
태어나는 애가
1억 빚지고
응엥한다고
그런 걱정하질들 말어
2021년
각 구청 출산통계
출산문제심각
법적
출산장려도 좋지만
미출산하면
혜택 환수
과태료 부과 등
결혼 안하면
매년 곤장 100대
월부로 하면
매월 곤장 10대
어떻소...
이렇게
형편성 균형 맞추어야
온갖 법률 만들면서
이런 것은 고려 대상 아닌가
저개발국은 애만 많이 낳든데
한국(천국)에 살면서
애를 안 낳는다
거야 골치 아픈게...
그래서 안 낳는다고...
도대체
누가 사는게
골치 아프게 만들어
혼내 줘야 돼...
요즘 먹고 튀는게
대세라고
오리발 잡는 혜택은 없냐...
202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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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가장 슬폈든 것들 / 손정모
사람이 살다보면 기쁜일의 기억보다
슬픈 기억들을 간직하게 된다
아마도 지울 수 없는 자신의 생애에
녹아있는 아쉬움의 훈장이 아닐까
오래동안 길을 가다보면 만남도 헤어짐도
순간적 찰라적으로 얼퀴며 설퀴며 간다
길을 가는동안 미운정 고운정 다 들고
그렇게 나이들어 가는 인생인 것을.....
내기억속의 유년과 청년과 장년이
녹아있는 이 길에서의 삶의 과정은
다들 순수하고 다정다감하고 유순하게
아려오는 그 기인 시간들이 찰라임에
고독은 음미요 생의 가르침이다
내게 있어 가장 슬픈 기억은
부모형제간의 이별도 아니었다
이성과의 이별도 아니었다
유난히 성장과정의 친구가 기억나지만
이 또한 아니다
철들어 가면서 친한친구를 가지는
그렇게 생각한 친구의 언동이
가장 슬픈 거억으로 각인된다
1.
사춘기를 지나 이 여자가 내 여자인가 할때
친구가 그여자와 사귄다는 소릴 들었다
바다 때문에 그때 엄청 슬폈다
지금도 아쉽고 서럽다
실제 확인되지도 않았다
결혼을 해, 애들이 있는지 어쩐지
아는 것이 진짜로 없다
아마 행복하게 잘 살것이라 믿는 것
밖에 없다 그친구와 학교졸업 후
이때까지 만나지도 통화도 못해 봤다
확인하기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바다 때문에 간격이 너무 길었다
동기끼리 이야기도 참석도 그친구는 없다
들려오는 소리
전화가 한 번 왔다는 것 밖에는
그 때 나도 철이 덜들어 마무리를
못했다
건너건너라도 소식전해 줄만도 한데...
2.
바다는 기쁜것 보다 슬픈 먼 거리감이 온다
가깝기 보다 참, 먼 것에 익숙해 있다
그렇게 삶도 참, 궁금해 지고 친구 소식도
건너건너 듣는다 이 역할을 잘해주는
배려있는 친구가 그리웠지만 스스로
그렇게 해 주는 친구는 없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마작을 마무리하고
간담도중 한 친구가 기분이 나빴는지
니도 다른 친구들과 같은 친구일 뿐이다
내게 너무 의지하지 마라
그 친구들 앞에서 그러는데
갑짜기 말문이 탁 막허오는데
하늘이 노랗다고 해야할까
내가 그친구를 아주 특별하게 생각했나봐
사실 그 친구가 마당발이고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였는데 그게
여러친구들 앞에서도 부담이 되었든 걸까
그렇게 간격을 두는 말 한마디에
나도 그 친구와 보통의 친구가 되었다
애뜻한 눈빛은 주고받고 있지만
특별한 친구에서 나는 스스로 강등 당했다
그친구도 나도 특별한 친구라고 믿고싶다
3.
아주 가까운 친구가 하나 있었다
부부간에도 친구인데 성장과정이
좋지 못했다 이것도 그 바다 때문에
너무 안타까운 현실이 이질되었다
부모를 팽게치고는 나와 동질이 될 수
없었다 여자라는 굴레가 한 집안의
흥망을 좌지우지 한다
아무리 부모가 나빠도 마누라가 좋아도
천륜을 그려칠 수는 없다
이 급변하는 변혁의 시대에 부모도 나도
다아 처음 겪으며 심사숙고하며
헤쳐온 길이다 물론 잘잘못이 있다
그중에서도 내 잘못 내그릇이 초라해도
받아드리지 않으면 안된다
삶의 과정은 인류의 숭고함에 있다
내 짝지는 진짜 바보도 있었고
진짜 천재도 있었다
그 바보가 사는 것도 그래야만
살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듯 맺고 끊음 중에 어느하나
소홀할 수 없는 내 삶에 그리움이 있고
슬픔과 기쁨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둘도없는 친구가
내 생애 가장 절실한 생애가치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나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마음을 받지 못하는 친구
내마음 내가 받지 못하는 친구
모두 다아 그렇게 흘러온
인생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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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지 못했다 / 손정모
멍청한 것에도 목숨을 걸지 못했다
그 많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도
공부하는 것에도 돈 버는 것에도
삶과 죽음 사이에도 용기가 없었다
목숨 걸고 싸워보지도 못했다
산사람도 죽은 사람도 아쉽고 아쉽다
왜 멍청하게 목숨을 걸지 못했는지
죽어 가면서도 목숨 거는 법을 몰랐다
거저 하늘이 말해 줄 것이라 믿었고
그 하늘이 천벌도 내려 줄 것이라고
내 손에 피 묻히기를 두려워했다
멍청하게 거짓말을 하면서 옳다하고
멍청한 사랑도 진실이라고 말하면서
멍청하게 얻어맞고 살다가 죽을꺼야
사는 것에 덧없어 남 말하는 것도
누가 내가 그렇게 목숨을 걸지 못했다
목숨이 너무 소중한 것이라 말하였기에
영원히 감춰질 것이라고 믿고 믿었기에
언젠가 밝혀지고 안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게 하늘의 뜻이지 내 뜻은 아니라고
그러니 목숨 걸 일도 아니라 했을 거야
누가 내가 무엇으로 목숨을 걸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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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배 띄우고 / 손정모
바다는 멀어도 내 가슴에 있었다
구비쳐 흘러 온 강물이 바다가 되고
두고 온 산천마저 저리 몸부림 쳐
부셔지고 엎어져 사라진다
바다는 내게도 손 흔들고
가슴 깊은 맥을 집어 올린다
한 여름밤에 울리는 별빛 보다도
이게 금도끼냐 은도끼냐
소도둑 물음에 뱃고동 싸늘히 떠난다
어제였나 그제였나 그그제였나
바다는 멀리 있어도
저하늘 은하수 보다 더 가깝다
은하의 별이 바다에서 가물거릴 때
내 바다는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오늘 이밤도 별은 내 가슴에 잠들고
검은 바다는 저리도 구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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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에 통달함 / 손정모
내 작은 아들이
나 보다 더 커다
내가 작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키를 낮출 때 알았다
작은 것을 줍어 모울 때
다아 쓰임이 있다고 믿었다
주름개미가 한 밤중에도
일한다는 것을
얼마전에 알았다
비우고 채우고
채우고 비우는 것이
술잔이 아닌
그대의 슬픈 시간이라는 것도
오늘에야 알았네
주름개미 그작은 것이
왜 자꾸 하늘로 올라가는지
내 작은 꿈이 저 높은 곳을 찾아가듯
하늘 가까이 청약을 하고 떨어지는
눈물의 방울이
아주 작은 것도 버려야 하는 것도
아들이 좀 더 커기를
말을 할 수록 그 말의 량이 많을 수록
말이 자꾸만 작아져 보이지 않는다
버리지 않아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도
이제야 안 다음
마누라가 키가 하늘에 닿았고
아들의 키가 너무 커다는 것을
왜 몰랐는지 몰라
우리 엄니 키는 늘 선반 위에 있었고
난 치마자락 부여 잡고 울었다
그런 시간 앞에
온 종일 매미가 울고
주름개미는 줄줄이 길길이
하늘로 올라갔다
더이상 오를 수 없는 곳에서
목숨을 걸고 뛰어 내렸다
기러기가 입수하기 위해
하늘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렸다
작은 것은 까불면 죽는다이
큰 것은 더 잘 보인다이
위대한 것은 말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키가 더 자랄 때까지 기다는 것이다
내 이놈 할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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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얘기들
누구 얘긴가 / 손정모
잘 생긴 것도 복이야
목소리 좋은 것도 복이야
그 복이란게 뭔 복인지 몰랐어
그 뭐 뭐시기가 줄줄 따른다나
뭐래나
그 뭐시기가 없는
복 없는 사람이
한 번 찍었다 하몬
끝 장을 본다는 거야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늘이 점지해 주는데 찍어야지
콩다꿍 콩다꿍 찍다보면
쌀이되고 밥이 된다고 했어
저 어떤 사람이 이런 말도 했어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어딧어
찍어봐라 찍어봐라 하는 넘도
있고
누가 한 번 안 찍어주나
오메불망 기다리는 의원님도
있다더라고
쫄쫄 따라 다니모
한 자리 얻어차고
콩코물도 할타보고 했는디
인자는 말짱 헛것이라 하더라고
세상이 바뀌다나 뭐라나
그러더라고
정말 웃기자
지가 준다고 먹어라고 해놓고
겨내레
지는 모른데
와 먹었냐고 내꺼
니 몸이 말하고 원하지 안 했냐 이 말이여
먹기 싫다 했는데
엎펴지는데
그람 우짜노
누구 좋으라고 한 시절 간거야
좋은 것도 없다는 것이
엿 것다
몸 보신도 몸 보시도 없는
그냥 꿂는 거야
돈도 명예도 그 써 잘데 없는
허울아니여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니가 알고
내가 알아도
법이 모른다는데
뭔 재주가 있갔어
인자 시집 장가
복 없이 못가
열번 찍어
아니 쫄쫄 따라 다녀 봐
콩 밥 먹기 딱 좋아
싫어
아녀
콩다꿍 콩다꿍 이 뭔 소리여
도대체 누가 한 소리여
지금
내에 얘기하는 겨
아니여 그게 누구 얘긴가
몰려 나두
저 어떤 법 얘기 하 것지...
(인자
예쁘다. 멋지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할래. 안할래. 놀자.
그런 소리하면
언젠가는
세바닥 뽑힐 날도 있을 겨)
..............................
여름날에는 / 손정모
여름날에는
뻐꾸기 울음소리도 듣고 싶다
님소식 기리는 소쩍새 울음소리도
강남 갔던 제비가
먼바다를 건너와 집을짓고 알을 낳고
새끼와 함께 하늘을 날으는 모습도 보고 싶다
떠난 이 모두가
떠난 마음 모두가 돌아 와
뻐꾹뻐꾹 뻐꾹이~ 노래를 하고
기다리는 내 마음도 소쩍새와 함께
소쩍소쩍 소~소쩍 노래를 하는
어느 여름날에
그것도 여름날 유성우가 떨어지는 밤에
강남 가는 제비가
아이들과 함께 그 먼길 떠나기 전에
뻐꾹뻐꾹 소쩍소쩍 들릴듯 말듯 울던
그런 여름날에
아주 오랜 철 지난 이야기를
또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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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별 / 손정모
잔들어 포옹하던 날
활짝 핀 꽃잎 너울 보았지
한 잔의 술을 마시며 부르든 노래
아직도 귀가를 맴돌며 나 살아있는데
너는 어이 가고 잔만 높이 들어 외치네
영원히 함께 춤추며 가자고
지금은 없는 너를 안고 나는 간다
한 잔의 술을 높이 들어 삼키며
이 한 많은 술을 안 마실 수 있나
그대 돌아와 내 눈에 어리니
이제는 웃으며 너를 안고 나는 간다
이 뜨거운 여름날의 추억들은
파도가 밀려와 한바탕 울고
갈매기 날아와 울며불며
빛 바랜 수평선 저 너머
그대 소리쳐 부르며 나는 울었다
나의 여인이여 나 이제 가오니
한 잔의 술을 소리쳐 높이 마셔다오
서럽게 울었든 그 꽃잎을 내게 다오
거칠은 이 가슴 숨죽여 가오니
그 어디든 그대 손잡고 가리다
어둠을 지나 새벽별 그대 보인다
(먼 산에 고요히 노젖어 가는 청춘이여
젊음이 험하고 거칠어도 내 눈에 그대
자장가일쎄 어쩌면 그렇게 부르고 싶었든
그 노래도 이제와 돌아보면 새벽별 같은것
새벽이슬에 젖은 내 발길 그 어디든
피눈물 같은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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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 가는 길 / 손정모
오늘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네
그대 저 소리 들리는가
여름도 다아 지났네
아쉬운듯 비는 내리고
빗소리 때문만은 아닐꺼야
낮선 거리를 헤메이는 이 느낌
소리내어 흐르는 강
오늘
그 강을 마주하고
뒹구는 낙엽 사이로
가고 없는 사람들의 노래가
내 가슴을 흔들고
그대가 부르는 노래 소리는
언제나
슬픈 빗소리 같이 남아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나룻배
오늘
빈 배로 돌아서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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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사항 / 손정모
사랑은 언제나 희망이다
돈은 늘 꿈만 같은 희망이다
그래도 사람은 늙어 가더라
때로는
사랑도 울고 돈도 울고
그렇게
울고 가는것도 희망인 것을
우는 것이 행복이라
눈물없이는 행복도 없더라
희망은 역시 뭐니뭐니 해도
존재감의 표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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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어머니 품에서 / 손정모
세월이 차고 넘처 바람따라 흘러가고
내마음 차고 넘처 물결따라 흘러가네
배고픔에 저린 시절 어디간단 말도없네
눈에 어린 고향산천 돌아보니 보고싶네
내어머니 꼬부랑 할머니 주럼많든 웃음
바람불어 그 어디 간단 한말씀도 없었네
잔잔한 물결일어 차고넘치는 별과 같이
눈감아도 내고향은 깊고 푸르고 찬란하다
그대품에 안긴 내고향은 사랑이 행복하다
그대 고향의 품이 내 품같이 포근하다
절로절로 가는 세월 차고넘처 푸르다
내마음 차고 넘처 밤세워 하늘에 메이고
그대 사랑 이리도 차고 넘처 흐르고 흘러
무성한 숲풀 밤벌레 울음소리 고고하네
잠못이룬 오늘밤도 내일에 가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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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오는 날은
바다는 더욱 그립다 / 손정모
태풍이 오는 날은
바다는 더욱 그립다
파도가 울부짖고
비바람이 후다닥 거릴때면
사람의 혼을 앗아간다
귀신 울음소리들이
천지를 휘젖고 나면
온바다도
난장판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이고
감사하는 날이 있었다
벌러덩 누었다면
한가로운 이야기다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다보면
기력이 남아있을리 없다
떨어지고 부셔지고
깨어진다
밥그릇도
서류뭉치도 쓰레기도
한동네 친구이다
너네없이 얼굴이 누렇다
음식은 먹을 수도 없다
그런데도 근무시간은
제깍 닥아온다
우우우 하다보면
너도 내도 없다
그런 바다가 그립다
태풍이 올때면
즐거운 날보다
고생한 그런 날이
더 그립다
그립다는 것은
보고싶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난다는 것이다
그립다는 것은
돌아가고싶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있음을
감사한다는 것이다
사랑했던 바다여
너무 울지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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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 / 손정모
국제시장 꽃분이네
그 친구가 생각나네
오늘 아침
어떤 친구
무슨 의리인지
마차를 탓다네
그렇게 소식없더니
잘난 소식
별단으로 장식하며
웃는 것 보니
꽃분이도 갔구먼
시시콜콜 전하던 소식
하루 아침에 끊고
소식없는 것 보니
잘 사는가 보이
세상살이 그렇거니
글세 그렇다 하니
나도 잘 사니
소식 안 전한다
우리 사이 다리도
그렇거니
그렇게
잊어져 갈 것을.....
마차는 떠나고
꽃분이만 서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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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노래 / 손정모
어느듯
하늘은 높고 푸르다
살면서
풍요로운 마음 갖지 못해도
오늘을 위하여 축배를 들자
단 하루를 살더라도
겸손하자
겸허한 마음으로
함께한 여러분에게
감사하자
내게
높은 하늘이고
늘 푸르렸으니
언제
겨울이 오고
봄날이 온다 하여도
오늘
그대를 향한 삶
9월의
노래를 부른다
(어제 보다 더 좋은
오늘을 위하여
내일 보다 더 좋은
오늘을 위하여
9월의 노래를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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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 판 결 ♤
옛날에 고집 쎈 사람과
나름 똑똑한 사람이
있었답니다
둘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는데ᆢ
고집쎈 사람은
4X7=27 이라
주장하었고
똑똑한 사람은
4X7=28이라
주장했습니다
한참을 다투던 둘은
답답한 나머지
마을 원님께 찾아가
시비를 가려줄 것을
요청 하였답니다
원님이 한심스런 표정
으로 둘 을 쳐다본 뒤
고집 쎈 사람에게
말을 하였답니다
"4x7=27이라 했느냐?"
"네....당연한 사실을
당연하게 말했는데,
글쎄 이놈이 28 이라고
우기지 뭡니까?"
그러자 고을 원님은
다음과 같이 선고
하였답니다
"27이라 답한 놈은
풀어주고,
28이라 답한 놈은
곤장을 열대 쳐라 !"
고집 쎈 사람은
똑똑한 사람을 놀리면서
그 자리를 떠났고
똑똑한 사람은
억울하게 곤장을
맞았답니다
곤장을 맞은
똑똑한 사람이
원님께 억울함을
하소연하자
원님의 대답은...
"4x7=27이라고 말하는
아둔한 놈이랑 싸운
네놈이 더 어리석은 놈
이니라
내 너를 매우 쳐서
지혜를 깨치게 하려
한다
1. 개랑 싸워서 이기면
개보다 더한 놈이 되고
2. 개랑 싸워서 지면
개보다 못한 놈이 되고
3. 개랑 싸워서 비기면
개 같은 놈이 된다
진실이 무조건 최상의
답은 아닙니다
진실보다 더 귀한 답은
포용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진실을 잠시 묻어두고
사랑과 관용으로
포용해주는 넉넉함이
세상을 풍성하게 할 것
입니다
~~~~~~~~~~~~~
~~~~~~~~~~~~~
광복절 단상(무제 본인)
김효영님 글
언제쯤
일제의 망령에서 벗어나려나?
광복절?
삼일절?
대한민국 최고 기념일이
고작 이런 것들이다.
일제시대가 언제였는데?
기념할 것이 그렇게도 없나!
천년만년
일본에 함몰되어 살건가?
~~~~~
국가 기념일 및
국가 유공자에 대하여
선생님의 의견(횡간)도 수용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1919.3.1운동(만세운동)과
8.15 광복은
국가적으로 기념해야
마땅(당연)합니다
당연한 것에 토를 다는 것은
횡간의 반작용
즉 기념처사 및 유공자에
대한 처우와 그 단체의
정치화에 따른 부작용이라
생각됩니다.
3.1 독립만세운동의 유공자
직계후손(손자녀)으로서
국가 기념일은
국가이념이며
국가의 존재가치이며
이 숭고한 정신에
애국자라 하면서
공직에 있었던 사람이
반국가적
이률배반적 관념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재정립이 필요하면
국민의 동의 절차를
밟아야 되겠지요...
저도
일제가 많은 개혁을 한 것에
공감합니다.
근대화의 초석은
일제가 국민정신 개혁,
국토개혁, 산업개혁,
행정개혁, 사법개혁, 등
이루해아릴 수 없지요.
그러나
일제의 해악은
국가를 침락하여
국가의 뿌리를 훼손하고
합병하여 일본국가로
만든 국가 근본뿌리를
말살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되찾고자 한
일제하에서
3.1. 독립만세운동의
정신입니다.
또한
일제로 부터 8.15 해방은
자의든, 타의든
이 나라의 국가근본을
되찾은 광복입니다.
타의에 의한 광복이라하여
국가 근본을 되찾은 날을
기념하는 것에
토를 다는 것은
사견이나, 사감이나,
횡간에 의한 것이
분명하다면
그 횡간에 토를 다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공정성, 형편성, 적절성 등이
정치적 논쟁으로
많이 훼손되었지요.
저도 이에 대해 불만입니다.
국가 이념이 해도해도
너무한다 입니다.)
좋은 하루되시길...
~~~~~
1919.3.1.독립만세운동
관련자들이
일본으로 강제이주한 사실. (1941년 귀국한
부모,누나의 얘기들...
그기서 태어난 출생자도 많음.)
그 장장세월 피박받은...
그 후손들이 그 상처를
회복하는데...
그 자존을 지켜주못하는
나라입니다.
일제 36년...1945년 광복.
부마사태, 부마항쟁,
광주5.18.
광주5.18의 정신은 숭고하지만
그 정신을 훼손한 것은
정치권이자, 그 유족들입니다.
자정능력 또한 그들이
회복해야 합니다.
~~~~~
댓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증조부 승정원 좌부승지
조부 2명 1919.3. 만세운동. 조부사망.
건국훈장 애국장.
작은 조부 후손없음.
대형1. 1926년생 독립운동 영향 사망
대형2.1937년생 동아대 졸
체신부 국장.옥조근정훈장.
부친(둘째)1910년 5월생
1919 독립만세운동 당시 9살
대형1 조카 1950년생 한양대 공대졸.
1970년대 산업기에
국장과 공대출신 등이
얼마나 고지식했으면
몰락한 집안을 일어키지
못했다.
또한 조부를 현충원에
모시지 못했다.
삶이란
쉬운것 같지만
엄청 어렵다.....
대부분 후손들은 고지식하다
그래서
사는 것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자존심 하나만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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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과 산업발전에 헌신해 온
내가 왜 정치활동을 하게 되었나 !
제 이름은 민계식(閔季植)입니다.
저는 평생을 산업계에서 보냈습니다만
저 자신이 경영자라기 보다는 과학기술자이며
발명가로 생각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그렇게 인정받고 있습니다.
저의 주요 경력을
요약하여 알려드리고
저 같은 과학기술인이
왜 정치활동을 하게 되었는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1942년생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조선항공학 학사(1965)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우주항공학 석사(1969)
조선공학 석사(1970)
M.I.T 공과대학 해양공학 박사(1978)
현대중공업 前 대표이사 회장
(CEO/CTO, 2001~2011)
한국과학기술원 조선해양공학부
초빙교수(2012~2015)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이사장(2013~)
수상
제1회 대한민국 공학상(1995)
대한민국 과학기술 훈장 웅비장(2001)
한국경영대상(2005)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2006)
닮고싶고 되고싶은 과학기술인상(2007)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2008)
최우수 기업가상(2009)
대한민국 지능형로봇기술대상 대통령상(2010)
자랑스런 서울大人(2011)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선정(2017)
국내외 학술지에 기술논문 300여편 발표
국내외 지식재산권 300여건 보유
마라톤 풀코스 370여회 완주
임진왜란과 거북선 등 5권의 저서
저는 4남 3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저의 부친(父親)은
오늘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교 의학부 1회 생이시고
모친(母親)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전신인
경성사범 1회 생이시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식민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저의 父親은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줄줄 외시며
조선이 왜 망했는가를 깊이 숙고하셔서
나름대로의 결론을 도출하시고
자식들에게 교육을 시키셨으며
제가 어릴 때부터
제 생애의 生活 지침이 된
3大 인생관을 철저히 교육시켜 주셨습니다.
글을 읽기 시작한 후
父親의 첫 번째 교육은
‶만인평등사상(萬人平等思想)″ 이었습니다.
U.N. 인권헌장 서문의 첫 구절인,
“Man is born equal by nature!
(사람은 날 때부터 평등하다!)”를
영어로 적어서 목에 걸어 주시고
외우라고 하시며
사람은 누구나 날 때부터 평등하니
절대로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다음이
“범인사상(凡人思想, mediocre)” 입니다.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능력의 소유자이며
너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능력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차이를
나타내는 길은 열심히 하는 것 밖에 없다.”고
하시며 항상 겸허하게
최선을 다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세 번째가 “자조의 정신(自助의 精神)”입니다.
약 2,000년 전 사마천의 “사기(史記)” 에 보면,
“모든 일에
남의 힘을 기대해서
성공한 선례가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적혀있다고 하시며
(안자춘추(晏子春秋)편에 나옴),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네 힘으로 해라!”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를
영어로 적어서 목에 걸어 주셨습니다.
저는 이 격언을
다섯 살 때부터 외우고 있습니다.
모친(母親)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와 같은
인간적(人間的)이고도
도덕적(道德的)인 생활에 대한
엄격한 스파르타(Sparta)식 교육을 시키셨습니다.
부모님의 교육에 따라
저는 어릴 적부터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부정부패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가지고 성장해 왔습니다.
저는 형과 누이가 많아서
잘못할 때면 형이나 누이로부터
군밤도 많이 맞고
바보 소리도 들으며
시달리기도 했지만
형과 누이의 전공이
의학, 법학, 문학, 교육학, 음악, 미술 등
전부 달라서
어릴 때부터 다양한 분야를 접하고
문화(文化)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여덟(8) 살 더 많은 바로 위의
문학하는 형(셋째 형)과 함께
꼭 읽어야 하는
세계의 고전 100권의 목록을 작성하고
차례차례 읽어 왔으며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 놓은 것이
두꺼운 파일북(file book)으로
10여 권이 됩니다.
이와 같이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을 체계적으로 접하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역사에 관심이 많아
많은 역사책을 읽으며
“국가의 의미”라던지.
정치제도, 국가의 흥망성쇠 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여왔고
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왔습니다.
국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제가 초등학교 때
국가의 구성요소와 함께
국민의
3대 의무를 배웠습니다.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그리고 국방의 의무입니다.
그러면 국가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며
국가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역사상 뛰어난 석학들이
국가의 의미에 대하여
표현한 말이 많이 있습니다만
제가 좋아하는 것
두 가지를 예로 들겠습니다.
독일의 시성(詩聖) 괴테(Goethe)는,
“개인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는 국가다.”
라는 말을 하였고
프랑스의 유명한 사상가 볼테르(Voltaire)는,
“숭고한 사람들에게는
국가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국가는 우리가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터전이요,
생활의 바탕이며, 방패가 되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세계적인 석학들의 철학을 정리하여 보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보호”에 있습니다.
여기서 보호라는 말은
안보적 보호,
경제적 보호,
사회정의 차원의 보호,
재난으로부터의 보호 등
총체적인 보호를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국가의 궁극적인 역할은
“국민행복”에 있다는 것이
저의 국가관이고 오랜 철학입니다.
이 과업은 정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국민 단독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국가를 이루고 있는
국민과 정부가 합심해서 노력해야
달성할 수 있는 과업입니다.
그러면 국가를 어떻게 운영해야 되겠습니까?
저는 중국을 싫어해서
어릴 때는 한글 전용주의자였고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주의였지만
논어나 공자님의 생애에 대한 책을 읽고
공자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공자님의 수제자가
공자님을 찾아뵙고,
“스승님, 국가경영의 요체는
무엇이겠습니까?” 하고 문의를 하였답니다.
공자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식(食)과 병(兵)과 신(信)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자님의 말씀을 오늘날의 의미로 해석하면
식(食)은 경제이고,
병(兵)은 국방이며,
신(信)은 사회질서,
또는 사회정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크게 봐서 이 세 가지면 됐지 않습니까?
지금부터 약 2,600년 전 일입니다.
20세기 들어서
우리 민족은 여러 면에서 성공을 했습니다.
광복을 하였고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정을
헌정의 기본 틀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였으며
3년에 걸친 6.25 전쟁을 치르면서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였습니다.
6.25 전란이 끝난 1953년
우리의 국민소득은
세계 최하위 수준(1인당 67달러)이었으나
그 후 60년 동안
연평균 7.4%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여
현재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였고
G20 국가 중의 하나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처럼 못 살다가
잘살게 된 나라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유일한 나라임을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를 이룩하였습니다.
2012년에는
전 세계에서 7번째로
“20~50클럽”국가가 되었으며,
2019년에는
역시 전 세계에서 7번째로
“30~50클럽” 국가가 되었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국민들이 모르거나
무감각한 것이
세 가지 있는데
그 중의
첫 번째가
“얼마나 잘 사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기적을 만든 나라,
자랑스럽던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저는 대학시절
산업계 실습을 다니면서
우리나라의 낙후된 산업수준을 절감하게 되었고,
“내 전문 분야의
우리나라 산업을 세계 제일로 만들겠다”는
꿈과 이상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이상을 가지고
외국 유학과 외국의 대기업에서
산업계 경험을 쌓은 후 귀국하였습니다.
귀국 후 모교에서 교수로 오라는 초청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만
꿈과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산업계를 고수하였으며
오직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하여
헌신해 왔습니다.
술, 담배는 물론
화투나 트럼프같은 놀이도 모르고
골프도 안치며
시간을 쥐어짜서
국가와 회사의 성장‧발전을 위하여
죽어라하고 일만 하였습니다.
물론 무슨 일을 하던지
체력이 있어야 한다는
부친의 가르침에 따라
어릴 때부터 등산이나 달리기 등
각종 야외운동을 하여왔으며
회사에서도
직원들 간의 친목과 건강을 위하여
주로 중식 시간에 수십 명,
때로는 수백 명의 사우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였습니다.
대표이사가 된 후
퇴직할 때까지 11년 동안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뿐만 아니라
보름 정도 되는 하기휴가 때도
가족과 함께 지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명절이나 하기휴가가 시작되기
하루나 이틀 전 해외 공사현장에 가서
직원들을 격려하고
공사현황을 살폈으며
문제점, 해결방안 등을 논의한 후
귀국하자마자 즉시 후속조치를 취함으로서
해외공사가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영상의 조치가 끝나자마자
신제품/신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에 돌입하였습니다.
그동안 아내에게 몹시 미안했습니다.
아내가 불쌍했습니다.
아내가 친구들 모임에 가면
친구들로부터 부부동반해서
해외여행도 다니고 즐기면서 지낸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저는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국내여행도 함께 한 적이 없었습니다.
2002년 서울-동아 국제마라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청년시절의 꿈과 이상을 이루었습니다.
우리나라 조선공업
초기의 열악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진인사(盡人事)의 노력으로
우리나라를 세계 제일의
조선해양 강국으로 만들었으며
제가 경영하던 회사는
압도적으로 세계 제일의
조선해양 회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네 번째의 종합 중공업 회사로
성장 발전하였습니다.
저는 70세가 넘을 때까지
대기업을 경영하면서
많은 학술활동과 발명을 통하여
우리나라 조선해양기술을 포함한
중공업분야의 기술자립화와
세계 일류화에 진력해 옴으로써
국가발전에 공헌해 왔습니다.
제 발명으로 다양한 신제품도 개발하고
신사업도 창출하였습니다.
신제품/신기술 개발 시 저의 목표는 항상,
“대한민국에서 최고가 세계 최고”
였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2001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가 되었을 때
현대중공업은 정부(당시 산업자원부)에서
인증하는 세계일류제품이 단 하나 뿐이었으나
제가 퇴직하던 2011년 말에는
34개로 증가하여
우리나라의 모든 산업체 중에서
세계일류제품 최다보유기업이 되었습니다.
70이 넘어 산업계에서 물러난 후
후진 양성을 위하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3년간 교편을 잡다가
완전히 은퇴하였고,
이제부터는 제가 좋아하는
연구, 독서, 저술 등을 하고
손자·손녀들을 돌보며
여유 있게 지내려고 하였습니다.
정치활동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나라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더니
마침내 정권이 바뀌고
국가적 재앙이 닥쳐왔습니다.
문재인 정권에 대하여
애초부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처럼 나라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국가관은 완전히 실종되고
국정운영 전반에 걸쳐
실정을 지나 파멸로 가고 있습니다.
문정권의 총체적 실정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고,
더 이상 비난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정권은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반국가적, 반도덕적, 반인륜적 행위와
파렴치하고 비열한 행위를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헌정질서를 훼손하는
정치권력으로 인해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룩한
기적의 경제성장과 민주화로의 발전이
좌초되는 망국현상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거듭 언급하거니와 문정권은 국가적 재앙입니다.
저는 살만큼 살았고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였습니다.
세상이 어찌되건
얼마간 더 편히 살다 가면 됩니다.
그렇게 할까 하고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자신 누구 못지않게
애국심이 강하고
행동하는 지식인,
실천하는 문화인이란 철학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자부하면서
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정권이 바뀌기 전 좌파들의 촛불시위가
한창이었을 때부터
그에 대항하기 위하여
나라지킴이 고교연합,
국민의 소리 등 애국단체도 조직하고
세종로 집회를 비롯하여
각종 집회와 토론회,
가두시위 등을 주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활동만으로는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시성 괴테(Goethe)는,
“나는 죄와 더불어 국가의 실책을 증오한다.
그 중에서도 정치적 실책을 한층 미워한다.
그것은 수백만의 국민을 불행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국가경영(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저는 정치에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이고
정치가 저의 생리에 맞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에 입문할 나이도 아닙니다.
이제는 여생을 편히 살 나이입니다.
그러나 역시 정치가 바로 되어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미약한 힘이나마 오직 나라를
바로 세우는데 남은 생을 바치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2020년 4·15 총선 때
미래통합당의 황교안 대표를 독려하기 위하여
종로구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등록을 하였다가
황교안 대표가 종로구 출마를 선언한 후
예비후보직을 사퇴하였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저 자신에 대해서
“나는 리더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으므로
훌륭한 리더의
성실한 추종자가 되겠다”고 생각하며
“큰바위얼굴”을 기다려 왔습니다.
나라를
부강하고
정의롭고
조화롭게
만드는 위대한 지도자,
큰바위얼굴을 말입니다.
평생을 기다려 온 셈입니다.
기다리다 실망하고,
다음번엔 하고 기다리다 또 실망하고⦁⦁⦁,
기다림과 실망을 반복하다
이제는 저라도
나라 바로 세우는 일을 해야겠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정치에 나섰습니다.
마치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전선으로 330척의 적 함대와 맞서
명량해전을 치르기 위하여
출전하던 때의 비장한 마음입니다.
저의 남은 생의 꿈과 이상은
“국민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의
대한민국 헌법가치에 기반하여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사회정의 확립 및 국민개개인의
자아실현으로
국민행복의 나라를 구현하며
평화적인 통일을 통해
국가웅비의 시대를 열어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국가관”이고
“국정운영 철학” 이기도 하며
또한 “보수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조선산업을
세계 1등으로 만들자”는
저의 청년시절의 꿈과 이상을 이룩한 것처럼
“우리나라를 국민이 행복한
세계 1등 국가로 만들자”는
제2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는 일에
남은 생을 바치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9년 3월
민 계 식 배상(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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