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이 빛나는 밤에 / 손정모(17004)
간밤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고향으로 부터 사자가 왔다
때 이른 꽃향기를 전하더니
한 번 다녀가라고 재촉한다
멀리도 가까이도 아닌 지척
개도 아닌 것이 자꾸 짖는다
낮설은 서려움이 밀려 온다
우리가 남이가 우리가 누꼬
쇠뇌당한 소리들과 바람들
또 어디론가 휘젖듯 지난다
남빛 바다에 펼쳐지는 여운
죽은 목숨도 이제는 안간다
어떤 고목의 그림자로 부터
오래전 순이가 떠난 뒤부터
갈매기가 제집이라고 한 번
다녀갔다고 고향이라 하고
오래도 살았지 낮선 그곳에
별처럼 빛나든 유리 조각들
동백꽃도 고향을 잃었다고
연어가 알을 낳으며 죽었다
회귀성 바람 끼와 철새들은
오랜 잔치 끝에 밤을 잃었다
슬프고 슬프다 한들 집 잃고
길 잃은 바람풍보다 더할까
간밤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고향으로 부터 사자가 왔다
별이 빛나는 밤에 길 떠나는
기러기의 행렬속 달이 울고
서울 간 순이가 눈이 빨갛게
꽃을 피우더니 밤세 갔다고
새파란 소녀가 혜안을 했다네
인생이 뭐 별 건가 18 섹스지
그러는 판에 고향이 그 뭐라고
2017.02.08.sons
------------------------------------
겨울 강에서 / 정호승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겨울 강 강 언덕에 눈보라 몰아쳐도
눈보라에 으스스 내 몸이 쓰러져도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강물은 흘러가 흐느끼지 않아도
끝끝내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어
쓰러지면 일어서는 갈대가 되어
청산이 소리치면 소리쳐 울리
------------------------------------
눈보라 / 유일하
냉혹하게 엉켜서
쓰러질 청춘이라면
이렇게 살지는 않았는데
장엄하고 쓸쓸히
넘어갈 고목이라면
이렇게 버티질 않았는데
눈꽃이 흔들며
바람에 떠밀리듯
눈보라 들썩이는 산하
헤치고 가야할
수많은 시련
매섭게 파고든다.
------------------------------------
간 격 / 이정하
그대와 나 사이에
간격이 있습니다.
엄청난 것도 아니면서
늘 그것은 일정하게 뻗어 있어
나를 절망케 합니다.
그러나 나는 믿습니다.
서로 다른 샘에서 솟아나온 물도
끝내는 한 바다에서 만남을.
그대와 나,
지금은 잠시 떨어져 있지만
나중에는 한 몸입니다.
우리 영혼은 하나입니다.
------------------------------------
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 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