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에는 / 손정모(16020)
여름날에는
뻐꾸기 울음소리도 듣고 싶다
님 소식 기리는 소쩍새 울음소리도
강남 갔든 제비가
먼 바다를 건너와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새끼와 함께 하늘을 날으는 모습도 보고 싶다
떠난 이 모두가
떠난 마음 모두가 돌아 와
뻐꾹뻐꾹 뻐꾹이~ 노래를 하고
기다리는 내 마음도 소쩍새와 함께
소쩍소쩍 소~소쩍 노래를 하는
어느 여름날에
그것도 여름날 유성우가 떨어지는 밤에
강남 가는 제비가
아이들과 함께 그 먼 길 떠나기 전에
뻐꾹뻐꾹 소쩍소쩍 들릴 듯 말듯 울던
그런 여름날에
아주 오랜 철지난 이야기를 또 하고 싶다
2016년8월10일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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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마음이 있는 곳에 / 안희선
불면으로 세월 쌓인
깊은 밤에
너의 목소리가 귓가에 다가와,
먼 하늘 바람따라 밀려드는 어둠은
내 마음의 빈 자리
깊어가는 그리움에
쓸쓸해지는 영혼이 서러워
홀로 깨어있는 밤의 정갈한 적막을 딛고
별 하나가 너의 뒷모습 끌어 안으면,
사랑할 수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이 벼랑 끝 같은 몹쓸 슬픔
언제나 눈뜨면 사라지는 너이기에
오늘도 지울 수 없는 외로움이지만,
이젠 내 마음을 묻고 싶어
너의 마음이 있는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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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들 1 / 조하혜
절박한 것에 관해
비명을 내지르는 습관이 사라지고서야
침묵이
가장 절박한 것임을 안다
아무런 강요 없이
맹세처럼 침묵을 지키는 수녀, 같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세계는
그래서 명암이 있다
깊숙이 들어간 곳은
상처 입고 움푹 패인 곳이 아니라
단지 어두운 곳이다
빛의 배려다
평면 도화지 위에 그려진 원이
비로소 평면으로부터 튀어오르듯,
원근법처럼
희미한 길의 입구에서
장님처럼 눈이 어둑해져 돌아오는 이들은
그래서 저마다의 다른 사연을 가지고도
꼭 운명처럼 한 번은 만나는가보다
삶이란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그려진
아름다운 원근법이다
길의 작달막한 가로수들이 꼭 침묵의 볼륨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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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다 / 천양희
바람이분다
살아봐야겠다고벼르든 날들이
다 지나간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그리워 진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절망은 희망으로 이긴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슬픔은 그래도 힘이 된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가치있는 것만이 무게가 있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소한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소리 더 잘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이로써 '내 일생은 좋았다'고
말할 수 없어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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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길을 가다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그리움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라질 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볕을 덮고 누웠고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이면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허공 중에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또 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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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서럽다 / 이대흠
강물은 이미 지나온 곳으로 가지 않나니
또 한 해가 갈 것 같은 시월 쯤이면
문득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네
사랑했던가 아팠던가
목숨을 걸고 고백했던 시절도 지나고
지금은 다만
세상으로 내가 아픈 시절
저녁은 빨리 오고
슬픔을 아는 자는 황혼을 보네
울혈 든 데 많은 하늘에서
가는 실 같은 바람이 불어오느니
국화 꽃 그림자가 창에 어리고
향기는 번져 노을이 스네
꽃 같은 잎 같은 뿌리 같은
인연들을 생각하거니
귀가 서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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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씨 / 이대흠
한 빗방울이 떨어지고
다른 빗방울이 떨어지는 그 사이를
천년이라고 하자
한 빗방울과 다른 빗방울 간의 거리를
천리라고 하자
천년 동안 비 내리고
지척인 천리는 구름에 가려졌다
그렇게 쳔년에 달팽이 껍질 하나 뒤집어쓰고
내 그대에게 여러번 다녀왔으나
천리 먼 길에
마음 발바닥 짓물러졌으나
다리가 다 닳아 자라발이 되었으나
그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한 빗방울과 다른 빗방울의 사이
그 아득한 거리에
빙하기에 묻혔으나 다시 발아한다는 연씨 같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슬픔의 씨 하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천년을 지나고
수많은 천리를 사이에 두고
나 그대를 향해 우두커니 서 있는 이 생을
천형이라고 하자
천직이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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