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Newly)

(16019) 남과 남 사이 / 손정모

intervia 2016. 7. 29. 20:10
      남과 남 사이 / 손정모(16019) 남과 남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가깝고도 먼 거리를 간격이라는 조율 잣대는 늘 심오한 말이 오간다 지구 반대편의 거리도 대화자의 가까움에 현금은 찰라보다 빠르게 간격을 무시한다 현혹의 순간은 정말로 황홀하다 남과 남 사이에는 우리가 있고 친구가 있고 그럼에도 늘 혼자 마침표를 찍었다 나도 찍고 너도 찍었을 사이의 간 붉었다 . . . 남과 남 사이가 얼마나 가까운데 너는 알기는 아니 남과 남 사이가 말 못할 사이라는 걸 눈 뜨면 보이는 것 거기 필요한 단어 간격 꽉 찬 숨소리 얼마나 사랑했는지 몰라봐도 돼 뒤 돌아 보지 않아도 돼 성공하고 잘 살아야 돼 우리가 없어도 돼 친구는 원래 없었든 거야 . . . 그래도 아주 먼 날 우리사이 친구였다고 너무 늦게 알아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 안 해도 돼 우린 늘 식어 빠질 때 친구였네 그걸 남과 남사이라고 하는 거야 아니 형제사이라고 해도 믿는 사람 아무도 없네 2016년7월29일ss ------------------------------------ 강가에서 / 고정희 할 말이 차츰 없어지고 다시는 편지도 쓸 수 없는 날이 왔습니다 유유히 내 생을 가로질러 흐르는 유년의 푸른 풀밭 강둑에 나와 물이 흐르는 쪽으로 오매불망 그대에게 주고 싶은 마음 한쪽 뚝 떼어 가거라,가거라 실어보내니 그 위에 홀연히 햇빛 부서지는 모습 그 위에 남서풍이 입맞춤하는 모습 바라보는 일로도 해저물었습니다 불현듯 강 건너 빈 집에 불이 켜지고 사립에 그대 영혼 같은 노을이 걸리니 바위틈에 매어놓은 목란배 한 척 황혼을 따라 그대 사는 쪽으로 노를 저었습니다 ------------------------------------ 안부 / 정병근 언제 한 번 만나자는 말 조만간 한잔하자는 말 믿지 말자 전화를 끊으면서 그것은 내가 한 말이기도 했으므로 약속은 아직 먼 곳에 있고 나는 여전히 동문서답의 헛바퀴를 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일이 어디 약속뿐이랴 뱉은 만큼 못다 한 말들 입속에 바글거리고 만나면 만날수록 결별만 수북수북 쌓인다 그런 게 다 인생이라고 나는 제법 늙어서 흰머리를 툭툭 털면서 발톱을 깎으면서 안경알을 닦으면서 생각하건데, 나는 죄의 신봉자였으니 일기장은 날마다 내게 반성을 촉구했고 지키지 못했으므로 반성은 더 많은 반성을 몰고 왔다 나, 이윽고 죄 많아 빼도 박도 못하겠으니 그대 어디쯤 잘 계시는가 제법 늙었는가 이 꽃이 지기 전에 우리, 폐단처럼 꼭 한잔하자 ------------------------------------ 나를 지우고 / 오세영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산이 된다는 것이다. 나무가 나무를 지우면 숲이 되고, 숲이 숲을 지우면 산이 되고, 산에서 산과 벗하여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나를 지운다는 것은 곧 너를 지운다는 것, 밤새 그리움을 살라 먹고 피는 초롱꽃처럼 이슬이 이슬을 지우면 안개가 되고, 안개가 안개를 지우면 푸른 하늘이 되듯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 '모텔 선인장' 엔 선인장이 없다 / 송유미 '나이아가라 폭포'가 걸린 모텔 선인장엔 언제나 폭포처럼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연인들은 선인장처럼 서로 몸에 가시를 박으며 뒹굴었다. 사막에서 만난 이들은 몸을 주어도 마음은 주지 않았다. 온 몸이 가시였던 이들은 피묻은 새가 되어 걸어나왔다. 네개의 벽이 모두 거울인 모텔 선인장은 언제나 포로노 비디오가 돌고 돌아도 몸이 그리운 연인들은 서로의 벗은 몸만 훔쳐보았다. 벽 속에서 벽을 두고 만나는 이들, 벗은 몸과 벗은 몸 사이... 벽들은 뒹굴어도 깨어지지 않았다. 영혼도 몸도 없는 이들은 몸속 깊이 박힌 가시에 아파하지 않았다. '두고 가는 것이 없나 살펴봐 ' 그들은 두고 가는 것도 없으면서 언제나 두리번 거울 속을 살피면서 그렇게 <모텔 선인장>을 걸어나왔다. ------------------------------------ 부고 한 장 / 김숙영 여름이 떠난다고 바람은 호수 위를 물비늘로 걷고 있다. 어쩐 일일까? 물속에 빠져서도 어두움 건저 올리는 교회 붉은 십자가 반기지 않아도 찾아오는 눈가에 잔주름처럼 깨어진 사금파리로 저며 내는 상처마다 핏 자국 흥건히 고이고 아직도 이루지 못한 기도가 거미줄에 걸려 아롱지는데 사물함에 꽂힌 부고 한 장 이름 모르는 묘비 오늘 또 세운다. ------------------------------------ 낙서2 / 김숙영 어디에 가 물어보아야 하나 내가 가야할 길 새는 무덤 없어도 숲에다 잠자는 집 짓는다 걸어온 길 보다 걸어갈 길이 더욱 아득한데 밤마다 불면증과 동침하는 여인 불러줄 노래도 들어볼 노래도 없다고 했다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 더 많은 세상인데 그래도 계절은 철따라 옷 갈아입을 줄 안다 멀고도 긴 하늘 길 밤새 걸어와 달이 벗어둔 헐거워진 신발 한 짝 주워들고 따라오는 작은 처녀별 오지도 않을 전화 기다리지 말라며 선잠 깬 바람 일러주고 돌아간다 ------------------------------------
Horseride To The Sky - A L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