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곳에서 살아온 날 (16017) / 손정모
지독한 외로움은 고독과는 다르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그런 곳에는
메아리도 없는 철저한 고독에 사는
이곳 보다는 후회스럽지 않은 외로움이다
무언가 듣고싶은 이야기는 날개짓하고
그렇게 보고파든 시간 저쪽에는 절망
언제 우리가 보고 들어야 했던
그런 시간들이 고독에 숨죽여 바라본다
우주 망원경속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우주의 생명의 전파도 영영 답이 없다
내 외로움이 답이 없는 것처럼
나는 어쩌면 보이지 않는 질서속의 한 점
어떤 곳에서 살아간다 해도
어떤 곳에서 살아온다 해도
벌은 벌이되어 나비는 나비되어
밤하늘의 별에게 슬프지 않는 인사를 한다
2016.06.21ss
아버지 어머니는
어느 별나라에 있다
지상에는 장마비가 내리고
어느 청개구리가 울고 있다
초등학교 국어책속의 청개구리
이야기와 비슷한 그런 소리
나이들면서 더욱 울어 목이 쉰다
어느 별에서 빛나는
한 점도 보이지 않는
그 울음소리만
이밤에
자꾸만 들리는 것 같다
개굴개굴개굴...
지상의 한 점 별
별이네
산소는 이상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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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물 (16014) / 손정모
가만히 생각하면
은근히 좋은 것
남이 알면
징글징글한 것
사람에게
최대의 적은 사람
그다음은 하늘
그다음은 돈
그다음 자가용
사람 하늘 돈 자가용
뇌물 뇌물 소리내 봐
사람 다리에 바뀌달고
하늘에는 번개
돈에는 다리가 있고
자동차에도 감정이 있다
이들 최대의 적에게
독 보다는 약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몰라
니 죽고 내 살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뇌물은
보통 사람에게는 돈
귀한 사람에게는 좆 아니 음부
분석을 위한 탄생
천기를 보는데는 슈퍼컴
이들도 인공지능 슈퍼컴이다
상상못할 뜻밖의 행운
그어
하늘이 내린
엿같은게
바로
뇌물이었어
징글징글한 웃음
세상이 이보다 더
엿 같은 수가 없다
2016.6.14ss
뇌물세상에
돈다발이 커지면
뇌성도 하늘에 닿아
부처의 웃음도
예수의 근엄함도
다아
뇌물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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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행복할지 몰라(16015) / 손정모
지금
행복하다고 생각해
불행하다고 생각해
말할 수 없는 고민이 속삭인다
순식간에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럼
그 행복 만원만 기부해
아니다 가만 생각하니
불행하네
니가 만원만 내게 주라
말은 쉽지만
결론없는 말이 떠돌다
목구멍에 넘어가면
그만 배가 불려서
소화되어 나오고
또다시
아니
행복한거야
불행한거야
지금이
답을 해봐
마침 그때
고물 할머니 손수례 앞으로
개새끼를
애기처럼
앞에도 차고 뒤에도 업고
얼마나 행복한거야
얼마나 행복할지 몰라
2016.6.16.ss
앞집 빌라를 리모델링 하더니
새로운 이웃이 왔다
새댁이 얼마나 아기를 갖고싶어서
아니 개새끼를 좋아했으면
애기처럼 포데기를 앞에 차고
서방님 오토바이에 올라
출퇴근 한다
요즘들어 개를 업거나 차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고물 할머니 불쌍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묘한 대비 그 엇갈림이
오래도록 남아있다가
그것도
행복할 수 없다가
스쳐갔다
(그녀도 개새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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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분노와 늙은 눈물(16016) / 손정모
신문을 봐도
티비를 봐도
휴대폰을 봐도
분노는 젊어서 타오르고
눈물은 늙어서 숨는다
오로지
무슨 말을 찾다가
길 잃은 시간
초침도 분침도 시침도
제 각각 돈다
젊은 분노도
늙은 눈물도
용암이 되지 못해
숨죽인 화산같다
하늘을 향한 연기
검었다 희었다
눈물마저 메말라
한시절을 보내는
젊음이 있고
늙음도 있다
분노도 삭으려 가고
희망은 어쩐지
자꾸만 늙어 간다
2016.6.16.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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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인생 계획 / 이장욱
식빵가루를
비둘기처럼 찍어먹고
소규모로 살아갔다.
크리스마스에도 우리는 간신히 팔짱을 끼고
봄에는 조금씩 인색해지고
낙엽이 지면
생명보험을 해지했다.
내일이 사라지자
모레가 황홀해졌다.
친구들은 하나 둘
의리가 없어지고
밤에 전화하지 않았다.
먼 곳에서 포성이 울렸지만
남극에는 펭귄이
북극에는 북극곰이
그리고 지금 거리를 질주하는
사이렌의 저편에서도
아기들은 부드럽게 태어났다.
우리는 위대한 자들을 혐오하느라
외롭지도 않았네.
우리는 하루종일
펭귄의 식량을 축내고
북극곰의 꿈을 생산했다.
우리의 인생이 간소해지자
달콤한 빵처럼
도시가 부풀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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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다리는 편지 / 정호승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 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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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유월 / 목필균
내게도
저런 시퍼런 젊음이 있었던가
풀빛에 물든 세상
떠들썩한 세상이 온통 초록빛이다
흥건하게 번져오는 녹음이
산을 넘다가 풍덩 강에 빠진다
푸르게 물든 강물
푸르게 물든 강물이
또르르 아카시아 향기 말아쥐고
끝없이 길을 연다
눈으로 코끝으로
혀끝으로푸른 혈맥이 뛰며
펄펄 살아 숨쉬는 6월 속으로
나도 따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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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유 / 이정하
그대 내게 왜 사랑하는가
묻지 마십시오.
내가 그대를 사랑함에 있어
별다른 까닭이 있을 수 없습니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듯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니
그대 내게 왜 사랑하는가
묻지 마십시오.
공기가 있으니 호흡을 하듯
내가 그대를 사랑함에 있어
별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저 그대가 좋으니
사랑할 밖에
그저 그대가 사랑스러우니
사랑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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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보 / 정정지
엄마는 밤늦도록
반짇고리에 모아두었던
형형색색의 헝겊조각을 꺼내
한 장의 조각보를
만들고 있다
이혼하고 사내애 둘 키우던 남자와
사별하고 남매를 기르던 여자가
둥지를 틀고
아빠와 엄마가 되었다
남자의 아이 여자의 아이
머잖아 태어날 그들의 아이
모양도 색깔도 다른 헝겊들
완성된 조각보 펴들고
환하게 웃을 날이
불면의 강 건너
깊은 골짜기에서 눈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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