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의 구애(求愛) / 손정모(16009)
꽃이 예뻐서가 아니라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봄날의 청춘이라서
뭔지 몰라도 그냥 반했다
꽃이 잘났서가 아니라
꽃이 멋져서가 아니라
봄바람에 취했어
그냥 해 본 소리가 아니라
청춘에 반해 본 사람은
한 눈에도 사랑스럽다
구애를 거절당해 본 사람은
사랑의 눈물이 뭔지도 안다
한 걸음을 때지 못해
몇 날을 지새우기도 하고
아롱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그렇게 애타는 봄이 왔다
봄바람이 따뜻하지만도 않은
가슴앓이 속으로 지나갈 때에도
꽃 향이 더 사랑스럽다는 것을
예전엔 눈앞에 두고도 몰랐다
울며불며 말하지 않아도
청춘은 봄바람에 휘날린다
수채화 같은 봄이 지나고 나면
사랑은 언제나 향기롭지 않다
한 때는 늘 바람처럼 지났다
볼수록 생각나는 사람도
그리운 향기에 울지 못했다
사랑은 언제나 청춘에 울면서도
꽃이 피니 청춘 같은 소리를 하고
돌아누우니 화려한 봄날은 간다
언제 어느 때 만나보면 또다시
열렬한 구애 같은 봄이 온다
꽃 피고 지니 하루 밤도 기인 밤
무얼 숨겨놓은 보석 같은 꿈의 알갱이
사그락 사그락 날 바람에 웃는
창밖은 꽃 피는 봄에도 화장을 한다
정열의 노래로 모셔 온 손님 같은 봄
이 봄에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면
더 붉은 화장으로 유혹하고픈 바람처럼
온 몸을 휘감듯 탱고의 봄은 간다
2016년4월18일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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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강에 가고 싶다 / 김용택
그 강에 가고 싶다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저 홀로 흐르고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멀리 간다
인자는 나도
애가 타게 무엇을 기다리지 않을 때도 되었다
봄이 되어 꽃이 핀다고
금방 기뻐 웃을 일도 아니고
가을이 되어 잎이 진다고
산에서 눈길을 쉬이 거둘 일도 아니다
강가에서는 그저 물을 볼 일이요
가만가만 다가가서 물 깊이 산이 거기 늘 앉아 있고
이만큼 걸어 항상 물이 거기 흐른다
인자는 강가에 가지 않아도
산은 내 머리맡에 와 앉아 쉬었다가 저 혼자 가고
강물은 때로 나를 따라와 머물다가
멀리 간다
강에 가고 싶다
물이 산을 두고 가지 않고
산 또한 물을 두고 가지 않는다
그 산에 그 강
그 강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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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여, 사월이여 / 조 병화
하늘로 하늘로 당겨오르는 가슴,
이걸 생명이라고 할까,
자유라고 할까,
해방이라고 할까,
사월은 이러한 힘으로
겨울 내내 움츠렸던 몸을
밖으로, 밖으로,
인생 밖으로
한없이,
한없이 끌어내어
하늘에 가득히 풀어놓는다
멀리 가물거리는 것은
유혹인가,
그리움인가,
사랑이라는 아지랭인가
잊었던 꿈이 다시 살아난다
오, 봄이여,
사월이여
이 어지럼움을 어찌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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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너는 오너라 / 박 두 진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희 오오래 정들이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도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다섯 뭍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가에,
나는 어디로 향을 해야 너와 마주 서는 게냐.
달 밝으면 으레 뜰에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서른 가락도 너는 못 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침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서면,
어어이 어어이 소리 높여 부르는
나의 음성도 너는 못 듣는다.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어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누이도 돌아오고,
너와 나와 자라난,
막쇠도 돌이도 복술이도 왔다.
눈물과 피와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오너라.....
비둘기와 꽃다발과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워서, 철이야,
너는 늴늴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싯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딩굴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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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에 걸려온 전화 / 정일근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
깔깔 웃던 여자 친구가 꽃이 좋으니
한 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한때의 화끈거리던 낯붉힘도
말갛게 지워지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던 시간도 사라지고
그녀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보다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
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
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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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엔 나도 / 유인숙
봄날엔 나도
화장을 해야겠다
겨우내 움츠러들어 초라해진 마음
언덕 아래 서있는
복숭아나무, 살구나무처럼
파스텔 톤으로
립스틱을 바르듯 화사하게
볼 터치하듯 그렇게 나도 꽃단장을 해야겠다
습해진 마음
툭툭 털어 내고
볕 좋은 날
봄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해야겠다
여기 저기서
건드리면 터질 듯한 망울들이
향내를 모아 담듯
향기롭게 봄날엔 나도 꽃향기 되어야겠다
갇혀있던 생각들
활짝 열고
가녀린 날개 펄럭이며
바람 따라 날아가다
봄 길로 오시는
그대 어깨에 기대어 쉼을 얻는
봄날엔 아, 봄날엔
그리도 사랑스러운 흰나비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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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의 생각 /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위에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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