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놓아보니 / 손정모(15024)
빈손으로 찾은 고향산마루
어린 산 까치 때가 놀고
무엇이 그리 반가운지
이리 날고 저리 날면서
푸른 하늘과 가을
이산 저산 산비둘기 때와 노닐었다
어찌 왔느냐고 물어 시는 것 같아
나는 이미 산이 되었다고 하신다
자연을 거슬리는 마음 한 쪽의 싸한
때 늦은 벌초를 하면서
저도 이제야 놓았습니다
어린고향이 이미 늙은 고향이라
산이 산인들 잡초만 무성
길 잃은 사람도
길을 찾는 사람도
어디서 무얼하든 몸만 성하다면
다시 못 볼 그리움 한 잔
다아 놓아보니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젊음
그리도 애타도록 보고파 하지 않아도
길이길이 아닌 들판에서도
잡초에 묻힌 내 생애의 필적
산이 되어도
다시는 아파하지 않으리
나는 본디 잘나지도 않았으며
빈손으로 돌아 본 내 고향
이미 저문 빈손이었든 것을...
2014년10월26일 ss.
--------------------------------------
못난 자격증 / 손정모(15023)
달달달 하다 왔네오
국민교육헌장만 외우면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줄 알았다오
아침 7시 집나갔어
밤 9시 집에 올 때까지
달달달 해도
대한민국 국민은 못 되는가 봅니다
인자는 국민교육헌장이 세발에 피
벌겋게 외워보니 국이 평 돌아 논이 됩니다
하이구야 논이 돈이 될려면
또 어찌해야 할꼬...
이래저래 대한민국 국민은 이리 힘들다
어떤 사람은 자격증이 종이 한장이라 하는데
이놈 종이 한 장이 와이리 무겁노
어떤 놈이 오만원권으로 살랑살랑 흔드는데
내 바지는 우째 피눈물에 졌네
에이 못쓸놈의 세상
어찌 가벼운 것이 하나도 없으니
나만 늘 가볍네 나만 가벼워
달달달
힘이 하나도 없네
누가 나 좀 툭 차주라
좀 엎어져 누워보게
누워서도 달달달 그라면 돈이 될려나
돈이...
그놈의 종이 한 장이
나를 이리 힘들게 하네
2015년10월12일ss
---------------------------------------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 류시화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 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재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
슬픔으로 가는길 / 정호승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하나
슬픔을 앞세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어디선가 갈나무 지는 잎새 하나
슬픔을 버리고 나를 따른다.
내 진실로 슬픔으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끝없이 걸어가다 뒤돌아보면
인생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저녁놀에 파묻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
그리움 / 이외수
거짓말처럼 나는 혼자였다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었다
보고싶은 사람도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사람만 그리웠다
사람들 속에서
걷고 이야기하고 작별하고 살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코 나와 뒤섞여지지 않았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왜
자꾸만 사람이 그립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 즈음에는 밤마다 자주 심한 바람이 불었다
방 안에 가만히 드러누워서 귀를 열면
바람은 모든 것들을 펄럭거리게 만드는 것 같았다
벽도 펄럭거리고
천장도 펄럭거리고
방바닥도 펄럭가리는 것 같았다
이따금 목이 떨릴 정도로 누군가가 그리워지곤 했다
꼭 누구라고 집어 말할 수는 없고
그저 막연하게 누군가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나는 사실 외로웠다
내 육신 곁에 사람들이 많았으나
내 영혼 곁에 있는 사람들은 없었으므로......
---------------------------------------
하늘빛 그리움 / 이외수
살아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
하루에 한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릅을 감싸 안으며
나즈막히 그대 이름 부른다.
살아간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
쫄딱 / 이상국
이웃이 새로 왔다
능소화 뚝뚝 떨어지는 유월
이삿짐 차가 순식간에 그들을 부려놓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짐 부리는 사람들 이야기로는
서울에서 왔단다
이웃 사람들보다는 비어 있던 집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예닐곱 살쯤 계집아이에게
아빠는 뭐하시느냐니까
우리 아빠가 쫄딱 망해서 이사 왔단다
그러자 골목이 갑자기 넉넉해지며
그 집이 무슨 친척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 누군가 쫄딱 망한 게
이렇게 당당하고 근사할 줄이야
---------------------------------------
편지 / 윤 동 주
그립다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저
긴 세월이 흘렀노라고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정녕 못잊겠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 났노라고만 쓰자
잠못이룬 밤에는
울었다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운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
나의 시 / 신광진
나는 시를 왜 써야 하는가
배움도 부족하면서 덫에 빠져서
뿌리치고 몸부림쳐도 다시 그 자리
슬프지 않은데 그 마음이 내게서 운다
자꾸만 슬픔만 보여서 견딜 수가 없어
뛰어가서 울어주고 싶은 눈물 속에 친구
젊은 날 손가락 열 개를 잘렸던 마음의 아픔
파문이 더 커지기 전에 포기했던 열 손가락
머리가 터져서 폭포수 쏟아졌던 어둠의 그 날
위기에 처하면 자신보다 더 소중했던 친구들
내민 손가락이 애처로워 지켜 주셨던 하늘
그 날의 아픔이 따라다녔던 가슴에 등짐 하나
아픔이 아픔을 낳아서 경계의 마음이 커져서
스쳐만 가도 그 사람이 느껴지는 마음의 얼굴
신들린 듯이 맞혀내는 이 상처를 어찌할까나
상처 위에 상처를 덮고 내 것이 없는 남겨진 운명
---------------------------------------
빈 가슴의 아픔 / 신광진
애원하는 너를 뿌리치고 냉정하게 돌아설 때
모든 것을 잊고서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비가 내리는 날이면 눈가에 슬픈 비가 내리고
눈보라가 치는 날은 미치도록 보고 싶어
하얀 눈 위에 뚝뚝 떨어지는 솟구치는 미안함
차갑게 돌아서도 지켜주지 못한 세월이 서럽다
다정하지 못했던 날들이 더 아프게 흐느껴
하늘을 보고 인연을 원망해 저주를 뿌렸는데
눈에 밟히는 지난날들 저주가 내린 그리움인가
무너져 내리는 가난을 등에 지고 죽음의 절규
지친 몸 냉골에서 홀로 사경을 헤매도 행복해
차갑게 식어버린 희망을 붙들고 꿈을 꾸며 산다
---------------------------------------
시월 / 나희덕
산에 와 생각합니다
바위가 산문을 여는 여기
언젠가 당신이 왔던건 아닐까 하고,
머루 한 가지 꺾어
물 위로 무심히 띄워보내며
붉게 물드는 계곡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하고,
잎을 깨치고 내려오는 저 햇살
당신 어깨에도 내렸으리라고,
산기슭에 걸터앉아 피웠을 담배연기
저 떠도는 구름이 되었으리라고,
새삼 골짜기에 싸여 생각하는 것은
내가 벗하여 살 이름
머루나 다래, 물든 잎사귀와 물,
산문을 열고 제 몸을 여는 바위,
도토리, 청설모, 쑥부쟁이 뿐이어서
당신이름 뿐이어서
단풍 곁에 서 있다가 나도 따라 붉어져
물 위로 흘러내리면
나 여기 다녀간 줄 당신은 아실까
잎과 잎처럼 흐르다 만나질 수 있을까
이승이 아니라도 그럴 수는 있을까
---------------------------------------
당신의 정거장
정거장에서 차를 기다리고
사람을 맞고 떠나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거장을 통해
오기도 하고 떠나기도 한다.
희망, 보람, 도전을 맞아들인 사람은
탄력이 있다.
절망, 권태, 포기를 맞아들인 사람은
주름으로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이 레일에서
기쁨은 급행이나,
슬픔은 완행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찬스를 실은 열차는
예고 없이 와서 순식간에 떠나가나,
실패를 실은 열차는
늘 정거장에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순간에도
정신을 놓치지 않는 사람,
꽃잠이 오는 새벽녘에도
깨어있는 사람,
작은 꽃 한 송이에도
환희를 느끼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맞이할 수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정거장은
수평선이나 지평선 너머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당신 가슴속에 있다.
정채봉 에세이집 "좋은 예감" 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