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은혜로 / 손정모(15022)
소식 없어 섭섭합니다
알고 모르고 떠난 자리
민들레도 피고지고
상사화도 피고지고
봄이 오고 가을이 가고
제비는 날아오는데
기러기도 울어 가는데
소식 없어 섭섭합니다
동해로 붉은 해 떠오르고
갈매기 날으는 바닷가에서
올 곳이 서 하늘을 보니
하늘은 어디가고
바닷물만 오락가락
해이야 놀자 해이야 놀자
서녘 저녁놀 숨어 우는
내 사랑 하늘이 거기 있네
어이할거나 섭섭합니다
동년 3월이 가고도
추계도 못하는 은혜로 있어
고개 숙여 내 사랑이 넘쳐
온 들길 헤매이고 돌아다보아도
소식은 간 곳 없고 찾는 이도 없는
그 고운 꽃잎 떨어진 바람의 날에
내 사랑 엄니 섭섭도 하여라
2015년9월23일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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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웃긴 꽃 / 윤희상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 밑에서
마침 꽃이 핀 것이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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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 이정하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는
그 마음을 전하지 못한 바보였습니다
사랑했지만 한 발자국도 다가서지 못한
바보였습니다
그러나
더더욱 바보는 내 이런 마음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그대였습니다
사랑을 꼭 말로 표현해야 아나요
꼭 가까이 다가서야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눈치챌 수 있나요
비록 내 마음을 전하진 못했지만
한 발자국도 그대에게 다가서진 못했지만
불타오르는
내 사랑을 눈치채지 못한
그대는 나보다 더 바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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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 최제형
가을이 오면
먼 길 떠나야지
산굽이 돌아
들꽃 외로운 오솔길로.
지난 세월들은
당신이 머물던 자리처럼
흔적도 없이 지워 버리고
끝내 남은 마음 한 조각
낙엽 속에 휘 날리며...
가을 바람 불면
하늘 더욱 멀어져도
나 홀로 먼길을 떠나가야지.
당신 그리던 먼 먼 나라로
하늘 한 자락 울리는
휘파람 소리를 내며
찾아도 보이지 않을 따오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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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을 멀리 사랑하기 위하여 / 김승희
관계와 관계 사이에서
내가 온통 벌거숭이로 피를 칠하고 있을 때
난 알 것 같았어,
왜 별이 아름다운지를,
난 알아질 것 같았어,
만일 구름의 너울이 없다면
어떻게 감히 태양을
사랑-이라고 부르겠는가를,
밤에 마지막 외침처럼 황량한 마음으로
지붕 위에 서 있으면
먼데 있는 사람아, 말하려므나
내가 평화처럼 혹은 구원처럼
금빛이더라고,
신비한 금선이 아득히 흘러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꿈꾸게 되는지를,
관계와 관계 사이에서
내가 울부짖는 하나의 욕설처럼 추악해질 때
난 알고 말았어,
별과 神은 왜 그토록 멀리 있어야 하는지를,
모든 성당의 창문에는
왜 천연색의 색유리가 끼여 있는지를,
오늘 내가 여기 천벌의 화형으로
지새우는 불이
어디엔가 먼 사람에겐 -
아마도 위안처럼 정다우리니
생각해 보아,
멀리 있어서 아름다운 별은, 하느님은-
우리가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왜 우리에겐 그토록 간격의 탐닉이
필요한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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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를 따라가다 / 안성덕
산신령님 이름이 뭐죠,
부음을 접하고 달려간
산악회원의 상가 영안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카페에서 우린 닉넴으로 통했으니까요.
누군가 핸폰으로 산신령님의 실명을 알아냈죠.
갹출한 부의금을 넣고 막 돌아서려는데
접수처 청년 방명록에 서명을 부탁하더라고요.
김만수, 평소대로 써넣으려다 가만 생각해 보니
글쎄 상주가 우릴 무슨 수로 알아보겠어요.
그래요. 고심 끝에 솔낭구,
뒤이어 고갤 끄덕이던
산꼭대기님도 닉넴을 써넣습디다.
접수처 청년 표정 참 묘해지더구만요.
일행이 선녀와 나무꾼, 이라고 계속 써넣자,
딱 뭐 씹은 얼굴을 하더라니까요.
민망하긴 우리도 매한가지였지요.
화톳불이
그렇게 화끈거리는 줄 미처 몰랐다니까요.
쥐구멍에 그냥 대가리 콱 처박고 싶은데
일행 중 하나가 자꾸만 머뭇거립니다.
누군가 거듭 채근을 해대고,
마지못해 개미만한 글씨로 에헤라디아,
라고 써넣는 순간
마지막 남은 회원
글쎄 총알처럼 뛰쳐나갑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들은, 저승사자님 같이 가요.
쪽팔려 딱 죽고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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