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 램 / 손정모(14072)
불러도 대답 없는 사람보다
부르면 대답하는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보기만 해도 절로절로 행복지는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생각만 해도 마음 따뜻한
그리운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언제 만나도 향기로운
당신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가 사는 동안에
당신의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된다면
나는 복 받은 사람이라
그 이름 그 사랑
얼마나 얼마나
애타게 불려 보겠습니까
불려도 대답 없는 사람보다
부르면 대답하는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2014년11월8일 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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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이상국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을 짓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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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말을
더듬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던 날들은
이미 과거였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비키니 옷장 속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할 때도 말을 더듬었다
우우, 우, 우
일요일엔 산 아래 아현동 시장에서
혼자 순대국밥을 먹었다
순대국밥 아주머니는
왜 혼자 오냐고 한번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고아는 아니지만 고아 같았다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억울하진 않았다
불 꺼진 방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나 대신 잘 살고 있었다
빛을 싫어하는 것 빼곤
더듬이가 긴 곤충들은 나와 비슷했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같았다
불꺼진 방 번개탄을 피울때마다 눈이 시렸다
가끔 70년대처럼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
우우, 우, 우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
벌레가 된 사내를 아현동 헌책방에서 만난건
생의 꼭 한번은 있다는 행운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진짜 가족이 되었다
꽃다운 청춘을 바쳐 벌레가 되었다
불 꺼진 방에서
우우,우,우
거짓말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거짓말 같은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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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을 졸업한 사실이
무슨 대단한 커밍아웃인양
시는 그렇게 시작된다.
마치 어려운 가정 형편에다
공부에도 별로 소질 없는
청춘을 통과했다는 이력의 상징처럼.
그래서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 하긴
지금도 여상을 나온 게
당사자에겐 콤플렉스가 되고,
심지어 연예인 가운데 누가 여상 출신이라느니 하여
고교시절 품행까지 의심하는 일부의 분위기마저 있다.
하지만 알다시피 서태지는
하월곡동의 한 공고를 중퇴했으며
탤런트 정우성도 상고 중퇴자이다.
서태지는 중졸인 셈이지만
얼마 전 TV에 나와서
농담 아니라 자신은 국졸 연예인이 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고 했다.
일찌감치 음악을 위해
학교를 때려치웠어야 하는데 후회된다는 말이다.
상고 출신 대통령을 세 명이나 배출한
이 나라에서 실업계라고 하여
그렇게 막 되먹은 학생들만이 다니는 곳은 아닐 텐데
여전히 ‘졸’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강남엔 실업계를 방치해 둬서는
절대로 안 되는 곳이고
(몇 년 전 서울 강남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공고가
결국 주민들의 등살에 강북으로 이전된 일이 있었다),
주요 결혼중매회사에서는
여상출신을 아예 접수조차 않는다니
이 무슨 수작들인가.
며칠 전 정윤회씨의 이력이 밝혀지면서
모든 언론은 “서울고가 아닌 상고 출신”이라고 보도했다.
정윤회의 행적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이러면 안 되는 것이다.
어법의 논리대로라면
“서울고가 아닌 보인상고 출신”이라고 해야지
어째서 모든 ‘상고’를 싸잡아 비하하는 듯한
보도태도를 취하는가 말이다.
시인의 '여상 졸업'은 일종의 원죄처럼
젊은 날의 초상을 결박하며 긴 성장통을 겪게 했다.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의' 의성어인지
의태어인지 모를 '우우, 우, 우' 소리는
더욱 우울하고 신산스럽게 한다.
그러다 시인은 '생에 꼭 한번은 있다는 행운'을
'아현동 헌 책방'에서 만난다.
그 곳에서 만난 '벌레가 된 사내'는
첫 사랑이자
나중에 가족의 일원이 된 사내일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기형도'일 수도 있겠고
'김수영'을 지칭할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사내를 만난 이후
시인은 본격적으로
‘거짓말 같은 시’를 제조하게 되는데,
그 공정에
거짓말 같은 그녀의 불우했던 청춘이
고스란히 투입되었다.
스무 살의 알베르 까뮈가
낯모르는 우리에게 장 그르니에의 '섬'을 권하듯
나는 우리의 열아홉살 청춘들에게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같은
안현미의 거짓말 같은 시를 권한다.
글 권순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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