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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다른 시간들 / 손정모(251221) 새로운 시간을 향한 열망 가만히 이유 없이 눈물 나는 시간 너를 위한 나의 시간은 짧았다 미안하다 더 잘하지 못했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걸으며 삼키는 눈물은 어둠보다도 혼자라는 것에 절망했다 더 울리는 발소리에 이 시간은 잠든 시간 더 멈춘 듯 흐르는 똑같은 일상을 향해 잠잠히 눈을 감아 보았다 그냥 뭔 말이 필요하냐구 소리치는 너를 향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해 나의 소리에 아무도 답이 없었다 24시간 그 보지 못한 시간들은 어떨까 그 보지 못한 시간을 확인하는 공원을 산책하면서 난 내가 무서운데 날 보는 넌 내가 무섭겠지 그런 생각 행동과 생각 그 느낌은 특별했다 하루 1시간씩 1시 2시 3시 4시 5시 그 외로움은 고독이었다 사랑했다 어둠속의 길 가로등 그 조용함 숨은 혹은 잠든 시간에 깨어나 밤하늘 보면서 죄송하다고 수십 번 속죄하는 이 마음은 지나온 나의 시간 그 시간의 반성에서 절절하게 용서 무엇을 향한 나의 지난 시간을 찾고 이 새로운 시간에 익숙한 길을 홀로 터벅이는 2025년의 동지를 앞둔 한밤에 새벽길을 찾아 나선 물음 무엇을 향한 새로운 시간 앞에서 늘 똑 같은 일상을 향한 외침은 혼자다 잔잔한 부름을 향한 잠을 떨치고 고독을 향한 조용한 존경의 부름을 넌 왜 거부하느냐 넌 왜 거부하느냐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사랑하면서 그 믿음은 허탈한 것도 소중한 것도 홀로 싸워 가는 외길 외로운 시간에 모두 숨 쉬듯 잠잠히 잠든 시간일 뿐 소중한 듯 소중하지 않은 듯 무시해도 그런 시간 앞에서 눈물이 났다 못난 늙은 나의 모습보다 그런 마음에서 모질게도 적막함에 무서운 새로운 시간 조용히 집으로 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 ~~~ 별의 눈물 / 손정모(251213) 찬바람이 밤을 휩쓸고 갔다 처마 끝 사이로 별이 보인다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지듯 별빛을 휘감아 올린 듯 떨어진다 별이 하나이더니 둘이 되고 셋 넷 별은 그렇게 별을 낳고 빛났다 아주 잠시 꿈속 같은 별이 흐르고 아침 여명에 태양이 눈 부셨다 빛이 어른거린 처마 사이로 햇빛이 떨어져 메말라 갔다 우리 사이에는 낮과 밤에도 설피 지나는 바람있다 그 소리는 새소리 같기도 하고 천둥소리 같은 가슴의 묵직함도 애태우는 목젖에서 잠시 머물다 소리 없는 웃음에 맴도는 사랑 같은 예쁜 세상을 엎기도 하는 발소리 길고 긴 여정을 잡아 보고 싶은 별을 올려 가슴에 담고 숨쉰다 내 사랑은 눈물 같은 세상을 닮은 바다의 조가비 하늘에게 보내는 빛의 태양이 뚝뚝 떨어지는 별 하나를 노래하고 서 있는 새소리 별 둘에 속삭인 연인 같은 포근함에 가을이 후딱 가고 한겨울에 부는 바람 찬 서리에 눅은 별이 외로운 것이다 하나 둘 떨어지는 별이 아이를 낳고 기쁨에 찬 세상을 보고싶다 언젠가 꼭 별의 눈물이 처마 끝으로 보름달 같이 뜰 것이다 보고 싶다 나의 별이여 나의 눈물이여... ~~~ 2025년을 돌아보며/손정모(20251208)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연임 실패와 재취임 성공. 12.3 비상계엄에 따른 윤대통령 탄핵 이대통령 취임 이 격변의 요동에는 민주주의를 다시금 고찰하는 안목의 세계에 직면한 자국 우선주의 세계화의 위축 세계기구의 영향력 약화 세계의 단체가 자국 우선 개인주의 상승기대를 제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핵 가진 국가의 사실상 통제가 불가능함을 표면 표출된 인식이다 이는 러.우 전쟁 / 기타 중동. 서남아시아 핵 관련국의 분쟁 및 국토경계선 불 확전에서 오는 민족주의 발상에 따른 분쟁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우선 민주주의에 따른 국가 내의 민주주의와 세계적(국가간의) 민주주의 한계로 보는 이해관계에서의 타협의 발산이 두드려졌다. 이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몰락 양진영의 협업이 사실상 와해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첨예한 간극 대립은 중일 대립이다 즉, 동맹국 관점이 아닌 지역간 자국보완의 관점에 서게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류의 변화 흐름은 소련붕괴에 기인하고 이때 우리는 세계패권이 서진하여 다음 패권은 중국으로 이동 될 것이라 예견했다 어쩜 이 진행의 격변기 일지 모르나 아마도 미국에서 멈춰질지 알 수 없다. 다만 현상에 대해 고찰해 보면 소련붕괴 시기에 한국에서도 지금 현상을 잉태하였다. 부정부패, 이권 카르텔, 좌우대립, 즉, 민주화란 이름으로 잉태하고 가꾸어진 노조의 강성 국가발전에 기댄 공직의 사유화가 발로된 것이다. 악의 순산은 검경의 사유 및 권력화 특히, 사법부의 공정판결 저해 이것은 공직의 관념적 부패가 심각하게 진행되었다. 2010년 초 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한 개혁의 목소리 정치권의 부패 박대통령의 탄핵과 윤대통령의 탄핵은 부패의 정점에서 바라본 무관심 한탄의 자조 섞인 눈빛에서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준다. 잠시, 트럼프 대통령의 비민주성의 (한미 FTA 사실상 폐기 등) 정치형태에서 균형적 푸라자 합의는 일본의 성장을 제어했다. 이는 소련붕괴에서 오는 각국의 성장균형을 요리한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이때 미국은 세계의 안보 세계의 국방을 도맡아 개별국가의 성장에 이바지 했다 여기에 기축점이 소련붕괴에 활용된 것이 중국이다 이 중국의 발전은 견제시점에 도달했고 미국은 국가성장 패권국가의 임계점에서 그동안 세계의 안보, 세계의 국방비용에 이바지한 혜택 받은 국가에 대한 비용감당과 미국의 붕괴한 절박한 산업 재생의 필요성에 비민주적 착취관세를 각국에 요구했다 상호관세도 세계적 단합대응이 불가능한 절대적 시점 최상의 패권에서 발휘되는 비민주적 폭주는 자국우선주의 발로다 그렇지 않으면 먹잇감으로 내놓겠다. 민주적 국가에서 비민주에 이해된 양면은 여기 있다 양면을 인정한 것이다. 다시 국내로 돌아와 보시다싶이 잘 보이지 않았던 정치권(입법)과 행정, 사법부가 비민주적이고, 불공정한 부패 카르텔에 함몰된 국가형태는 여실히 보고있다 범죄자가 이끈 정당이 압승하고 대통령으로 밀어준 비윤리적이고 비양심적인 결과 현실 앞에서 망연한 국가자폭은 2010년대부터 터져 나온 싹 갈아엎어야 한다. 이게 나라냐. 여기에 부응 못한 참단한 국민의 선택점은 어쩜 비굴한 울음인지 그 아픔의 신음소리의 결과다 비민주적 선택, 비윤리적 선택, 비양심적 선택, 이것은 비민주적으로 해 봐라 비윤리적으로 해 봐라 비양심적으로 해 봐라 다아 눈 감겠다는 무언의 결과표출이다. 그렇담 정치권이 뭐했느냐 더민주도 국힘도 다아 옳다 과연 선거가 과연 공정했을까 더민주의 민주적 국정 운영일까 더민주의 개혁은 터무니 없을까 국힘의 목소리는 틀렸을까 국힘의 내분은 공론적 일치 민주발상일까 혼란스러움에 각이 껄껄차는 더러운 정치판을 국가의 개판을 참담하게 바라보는 국민은 과연 어떨까 구워먹던 삶아먹던 빨리 결판내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개혁되지 않으니 개혁하고 또 개혁하고 몽땅 엎어봐라 또 엎고 또 엎고 그러다 보면 온전한 새판도 나올 것 아닌가 급변 시기에 질질 끄는 세월만 좀 먹는 기생충은 잡아야 한다 단결 못하는 그 잘난 놈들 이당 저당 기웃거리는 송사리도 잡고 별 미친 의리 없는 놈도 잡고 죄 짖고 큰소리치는 잘난 목소리도 들어보는 면상도 민주라고 더더민주라고 다수면 양잿물도 마시자고 그게 참 민주적이라고 우린 인자 몰라 빨랑빨랑 싸워 끝내 보자고... 입법, 행정, 사법, 다아 골로 가야 하는 것 확실히 맞아 다아 자초한 일 그러니 군소리 쇠소리 쉰소리야 오랜된 개혁소리야.... ~~~~~ 한국의 제1 폐해! 제일 어리석은 머리 판검사들 ~~~~~~ 사람 사는 것은 무엇! 민주주의 아냐! 양심 아냐! 윤리도덕 아냐! 정의, 공정 아냐! 의리야 의리라고! 왜, 사람이니까 사람도 동물 고등 동물 고등어이니까 맞나! 아님 말고 깡패 아나 사람 사는 기본은 강패 의리야 정치그거 술수 표 받기 위한 어깨야 어깨가 주먹으로 싸우나 말로 싸우 지 그래서 개판이야 ~~~~~ 중,일이 뭘로 싸워 말로 싸우지 애들같이 사탕있냐고... ~~~~~~ 러,우 전쟁 우째 저런 전쟁이 선 그어 놓고, 힘 빼기 권투 선수가 하아 아니지 레스링 피겨선수 그렇네 불꽃놀이네 뭔 구경시킨다고 돈을 들어 사람 죽이네 유럽 몽땅 자금 걸고 러시아 시간 걸고 우크라이나 쇼 불꽃 누가 언제 돈 떨어질까 ~~~~~~ 한국의 코메디 언제 끝날까 그야 모르지 숨넘어가는 소리 연기 잘하는 놈이 이기겠지 ~~~~~~ 미국 그동안 뭐 했드라 그래 놓기 힘들지 세월이 얼만데 그냥 놓겠어 마이 무울게다 성공할게 분명해 줄서는거 보면 몰라 그냥 눕는데 ~~~~~~ 라스트 댄스는 뭘가 ㅈㅁㅇ네 사람들 깜방은 가겠지 우여곡절도 많을꺼야 그 뭔들 못 하겠어 사생결단으로 얻은 청춘인데 삽질도 많겠지 구덩이 판다고 힘 좀 쓸거야 ~~~~~~ 참, 어리석은 게 사람이거든 눈으로 볼 껀가 심장으로 볼 껀가 손으로 볼 껀가 머리로 보는 놈이 제1 어리석은 패자 한국 정치가 그래 한국 검, 판사가 그래 제 밥그릇도 못 챙기는 그런 권력에 완장만 영광을 말 하네 한국에서 제1 머리 좋다고 제 할 일 안하고 정치한다고 다아 버려 놓았어 국가와 자신 마져도... ~~~~~~ 지라바과 (ㄹㄹㅇ 붙이기)개혁이 전화위복이 되어 훗날 대한민국을 영화스럽게 하리란 기대 미쳐서 이룬 영광 영광의 나레를..... 애국자는 시간이 한 참 지나야 알 수 있다 애국애국 하지만 진짜 애국인지 알 수 없다 애국이라 믿는 것이지... ~~~~~~ 아비로서 딸의 성장통찰을 응원하면서 (복사 및 배포를 제한합니다) 연구일지 감응의 교육미디어 사례(1): 베토벤 합창교향곡 교육사연구방법 기말 에세이 감응의 교육미디어 사례(1): 베토벤 합창교향곡 - 다시 교육할 수 있는 용기 1. 교육자는 학생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교육자의 말과 행동, 표정 등은 학생의 지성, 감성, 태도와 같은 측면을 자극하고 그로 인해 학생의 성장, 좌절과 같은 다양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처럼 교육자는 학생에게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번 학기 안0식 교수님의 대학원 수업에서 함께 논의한 ‘교육은 물들이는 것’이라는 통찰은 교사의 영향력의 측면과 맞닿아 있다. 동양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듯이 찰나의 만남으로도 우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렇다면 수많은 만남 중에서도 교사와 학생의 만남은 목적이 뚜렷하다. 학생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그 만남 자체의 고유한 목적이자 필연적 결과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자에게 주어진 고유한 직무 또한 ‘학생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2. 이번 학기 대학원 수업은 삶 속에서 우리에게 영향력을 주는 주체를 ‘미디어’라고 보고, 우리 주변에 어떤 교육미디어가 있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탐색하는 것이었다. 나는 학부와 석사 과정에서 ‘음악교육’을 전공했기에 교육미디어로서 음악 또는 예술의 영향력에 대해 탐구해보고 싶었다. 마침 올해 6월, 부산 콘서트홀 개관 공연으로 ‘베토벤 합창교향곡’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았고 올 한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을 고르라면 그 공연을 고를 수 있을 만큼 강렬했기에 연구 주제로 선택했다. 합창교향곡은 나에게 왜 그렇게 강렬하게 다가왔을까? 당시 그 공연은 200명 가까이 되는 다양한 배경의 예술가들이 함께 연주하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곡이었다. 특별한 연주 형태와 가사의 내용으로 인간을 향한 희망과 연대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음악은 사람의 감성과 정서에 영향을 주는데 당시 나는 학급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그 공연을 보고 난 후 우리 반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희망의 감정을 강하게 느꼈다. 또한 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형제이기 때문이라고 느끼게 되었는데 그 때의 강렬한 연대의 감정과 생각은 다시 힘을 내서 1학기 교육활동을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3. 교육자가 학생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학습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면 지식과 감정, 행동 모두에 변화를 낳게 된다. 이처럼 마음이라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구성하는 밑바탕이고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원동력이다. 교육자가 학습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감응’시킨다고 표현할 때 ‘교육미디어’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영향력이 있다면 그것을 ‘감응의 교육미디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음악, 문학과 같은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감(感)하게 한다. 예술 작품에서 느껴지는 형식과 정신의 아름다움이 사람의 마음을 감탄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아름다운 것은 타자를 감탄하게 할 수는 있어도 감응하게 만들지 못하며, 단순히 재미있고 행복한 것도 타자를 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응하게 만들지 못한다. 진정으로 감하고 응할 수 있는 비결은 정신의 아름다움과 관련이 있다. 이때 정신의 아름다움은 많은 이들이 갈망하는 일신의 안락함, 호화, 유희, 향유에서 오는 만족감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타자를 감응하게 하는 정신적 아름다움은 필연적으로 숭고함에 가깝다. 숭고함의 방향은 시선이 ‘나’에게서 ‘타자’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에너지의 측면에서 본다면 나의 에너지가 타자를 향할 때 비로소 타자의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4. 그러한 점에서 베토벤 합창교향곡의 매체성과 영향력(여기서 감응력)을 살펴보자. 베토벤은 젊은 시절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쉴러의 시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1786년)’를 접하고 신선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약 30년의 시간이 흐른 1824년, 그 시를 모티프로 한 ‘합창교향곡’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형식과 그 안에 흐르는 정신적 아름다움에 사회와 대중은 경이로움을 느꼈고 열광적인 찬사를 보냈다. 쉴러의 정신은 시에 녹아들었고 그것은 베토벤에게 영향을 미쳤다. 베토벤은 그 영향력을 오랜 시간 품고 있다가 음악으로 발전시켜 표현했고 그 음악은 더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영향을 주었다. 영향을 받은 이들 중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환희의 송가’라는 작품을 만들어 또 한번 감응을 실천 했다. 현재 합창교향곡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유럽연합(EU)의 국가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은 시대를 불문하고 인류를 감응시키는 위대한 문화유산이자 음악이라는 형태의 훌륭한 교육 매체이다. 5. 한편 이러한 감응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데 이 감응의 연결고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겠다. 합창교향곡의 모티프가 되는 프리드리히 쉴러의 정신 역시 쉴러가 무언가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일 것이다. 이렇듯 인류는 시작이 누구라고 할 수 없는 연결고리 속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어진다. 선조들의 무형의 유산인 베토벤 합창교향곡은 200년이 흘러 지금의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영향력은 베토벤 한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많은 이들의 정신이 흐르고 흘러 전해지는 것이며 수없이 많은 감응의 결과가 전수되고 실천되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베토벤 합창교향곡은 현재도 많은 음악인들의 연주를 통해 재현되고 재해석되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이자, 살아있는 정신의 집합체이다. 6. 최근 영화배우 이0재 선생님이 별세하시면서 생전에 말한 수상소감이 화제가 되었는데 그는 “그동안 모든 분들께 신세 많이 졌다. ” 라고 말하였다. 여기서도 나는 미디어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타자와 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이 영향력을 무형의 유산이라고 보았을 때 교육사의 관점에서 교육을 유산이라고 부르는 것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교육이란 누군가로부터 가치 있는 정신을 물려받고 또 누군가에게 물려주는 행위인 것이다. 이때 영향력이 전달되는 미디어는 ‘사람’이나 ‘사물’ 또는 ‘예술’처럼 무엇이든 가능하다. 교육 미디어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영향력을 주고받는다. 미디어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그 영향력의 정수는 어쩌면 같다고 할 수 있다. 미디어를 통해 계속해서 전달되고, 흐르고 있는 것은 바로 정신이다. 즉, 교육사의 관점에서 인류 역사상 끊임없이 전달되고 있는 유산은 정신이다. 그리고 이 정신적 유산을 개인의 삶에서 아름답게 발전시키고 실천하는 삶을 예술적 삶(아름다운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7. 나는 언제나 인격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 자신이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삶 자체가 교육미디어가 되어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보여주는 것으로 영향력을 끼치고 싶었다. 인격교육을 베토벤 합창교향곡이 나에게 알려준 감응의 개념과 관련시켜 보자면 감응은 정신적 아름다움(숭고함)으로 가능한 것이고, 정신은 타자를 향할 때 아름다워진다. 한편, 인격 역시 타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그렇다면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그리고 실천이 감응의 비결이자 인격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베토벤은 타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해서 평생을 고독하고 외롭게 살았지만 그가 남긴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합창교향곡은 타자를 향한 그리움과 연결되고 싶은 강한 열망의 메시지를 가득 담고 있다. 베토벤이 인생의 말년에 깨달은 타자에 대한 용서와 사랑이 담겨있기에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을 감응시키는 것이다. 8. 이번 학기 대학원 수업에서 나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는 “감응시켜 보라.”는 교수님의 말씀이었다. 숨이 턱 막히고 막막해졌다. 부담감에 3주 동안 글을 한 자도 쓰지 못했고 그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타자를 감응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우선은 그동안 교단에서 경험했던 실패가 먼저 떠올랐다. 실패는 나로 하여금 다시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감응을 행하지 못하고 말로만 감응을 논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감응을 시킬 수 없는데 감응으로 논문을 쓴다 한들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결국 학위를 위한 것이고, 나의 명예를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고뇌의 시간은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해주었고,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방향을 다시 설정하게 해주었다. 9. 한 학기의 연구를 통해 내가 깨닫고 소망하게 된 것은 나 자신이 감응의 교육미디어가 되는 것이다. 짧은 인생이지만 그동안 좋은 선생님들과의 만남을 통해 배운 것이 많다. 또 나에게 무형의 스승이 되어준 내 삶의 숱한 고난과 고통들이 있다. 이를 통해 배운 아름다운 정신을 나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들에게 흘려보내는 것이 베토벤 합창교향곡에서 느낀 형제애(인류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나는 더 이상 교육활동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교직을 불편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를 계속 교육하게 하는 작고 희망적인 교육 사례들이 있었는데 그런 작은 사례들을 블로그를 통해 공유하고, 감응의 교육미디어 사례도 연재해보려 한다. 교육활동의 사례들을 기록으로 남겨 타자와 나누고 성찰하는 것은 교육자의 책무이자 동시에 큰 보람과 기쁨임에 틀림없다. 더불어 그것이 곧, 감응을 실천하는 첫걸음인 것이다. ~~~ 옮긴이 변 베토벤의 음악과 음악성을 깊이 좋아한다 베토벤은 당시 집권자 및 단체를 향한 곡을 만드는 풍조에서 대중에게로의 곡을 시연한 선구자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시대를 탈피한 창조의 정신, 불굴의 의지, 청력손실에도 놓지 않았던 작곡, 정신적 결함에도 그의 곡은 영원할 것이란 믿음. 나는 6개월여 그의 초상화를 아주 섬세하게 칼 끌 으로 만들었다.(1981.11.09.완성) ~~~~~~~ 내란 관련 잘 정리된 글 옮겨온 글, 출처 하단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으로 단정하고 탄핵한 논리가 완전히 깨져 버렸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형사재판에서다.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과 관련해 내란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올해 5월부터 본격화됐다. 이 법정에서 나오는 증언들과 제출되는 증거들이 헌재가 2025년 4월 4일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할 때 근거로 삼았던 핵심 내용을 완전히 뒤집고 있다. 헌재는 세 가지를 근거로 윤 대통령을 내란으로 몰았다. 한덕수 전 총리의 “<국무회의 절차 위반>” 증언,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의 “<대통령이 의원 체포 명령>“ 증언, 홍장원 전 국정원 차장의 ”<체포조 운영 메모>“. 이 세 기둥 위에 내란 판단이 세워졌고 8대 0 만장일치 탄핵이 나왔다. 그런데 지금 형사 법정에서 이 세 기둥이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11월 5일, 통화 기록이 말하는 진실 11월 5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이 증인으로 섰다. 변호인단은 비화폰 통화 기록을 스크린에 띄웠다. 2024년 12월 3일, 계엄 선포 당일의 통화 내역이 시간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곽종근이 예하 부대 지휘관들에게 “국회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한 시각: 오후 12시 20~30분 사이. 윤석열 대통령과 곽종근의 통화 시각: 오후 12시 31분 법정에 침묵이 흘렀다. 순서가 맞지 않는다. 곽종근은 헌재 심판에서 분명히 이렇게 증언했다. “<윤석열 대통령께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저는 그 명령을 받아 즉시 예하 부대 지휘관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문형배 재판관은 여러 증인 중에서도 곽종근의 증언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탄핵 선고문을 보면 곽종근의 증언을 “<구체적이고 일관성 있으며 신뢰할 만하다>” 고 기록했다. 실제로 곽종근은 특전사령관이라는 고위 군 지휘관 신분으로 대통령과 직접 통화한 당사자였다. 헌재(헌법재판소)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없었을 것이다. 이 증언이 '내란' 인정의 핵심 고리였다.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장악하고 의원들을 체포하려 했다는 주장의 유일한 직접 증거였다. 그런데 통화 기록은 정반대 사실을 보여준다. 곽종근이 먼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11분 뒤에 대통령과 통화했다. 만약 대통령이 명령을 내렸다면 통화가 먼저 있어야 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명령을 받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 군 지휘 체계의 기본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변호인이 차분하게 물었다. “곽 사령관님, 이 통화 기록을 보시면 사령관께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시각이 12시 20~30분이고 대통령과의 통화는 12시 31분입니다. 대통령과 통화하기 전에 이미 명령을 내리신 것인데, 어떻게 대통령께서 지시하셨다고 헌재에서 증언하실 수 있었습니까?” 곽종근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이렇게 답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법정이 술렁였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서”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확인하지 않고 추측으로 증언했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명령했을 거라고 짐작해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사실 확인 없이, 통화 시간 확인도 없이, 그저 그럴 것 같아서 헌재에 증언한 것이다. 그러자 곽종근은 책임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진우 수방사령관께서 먼저 그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변호인이 다시 통화 기록을 제시했다. “이진우 수방사령관과 사령관님의 통화 시각은 12시 35분입니다. 사령관께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이후입니다. 시간상 이진우 사령관으로부터 먼저 들으신 것이 아닙니다”. 곽종근이 또 말을 바꿨다. “그럼 김용현 국방부 장관께서...” “김용현 장관과 사령관님의 통화는 해당 시간대에 기록이 없습니다”. 모든 변명이 숫자 앞에서 무너졌다. 통화 기록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시간은 조작할 수 없다. 비화폰 통화 내역은 모두 서버에 기록되고 백업된다. 통신사 시스템이 자동으로 생성하는 객관적 데이터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곽종근은 왜 이런 증언을 했나?> 악의가 있었나, 아니면 단순한 착각이었나. 악의가 있었다면 누구의 지시를 받았나. <착각이었다면 왜 헌재는 이렇게 중요한 증언을 통화 기록과 대조해보지 않았나?> 어느 쪽이든 심각한 문제다. 부하들의 증언, 전언의 연쇄 “그래도 곽종근 외에 다른 군인들도 같은 내용을 증언하지 않았습니까? 이상현 여단장, 김현기 특전대대장, 안효령 등이 모두 대통령이 명령했다고 <들었다고> 증언했지 않았습니까?”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헌재 심판 과정에서 여러 군 간부들이 증인으로 나와 비슷한 증언을 했다. “대통령께서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을 들었다”는 취지의 증언들이었다. 그런데 사실 관계를 정밀하게 확인해보자.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직접 통화한 적이 있나. 없다. 단 한 명도 없다. 대통령의 명령을 직접 들었나. 역시 없다. 그렇다면 이들이 헌재에서 증언한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곽종근이 전화 통화를 하면서 주고받는 말을 옆에서 주워들은 것이다>. <곽종근이 “대통령께서 그런 지시를 하셨다”고 말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들은 것이다> . MBC가 보도한 내용을 자세히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한 부하 지휘관이 곽종근에게 물었다. “대통령께서 그런 지시를 하셨습니까?” 곽종근은 “응”이라고 짧게, 조심스럽게, 주저하는 목소리로 답하고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부하는 곽종근의 그 짧은 대답을 듣고 대통령이 명령했다고 이해했고, 헌재에 가서 “곽 사령관께서 대통령이 명령하셨다고 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한 것이다. 이것이 전언(傳言)의 구조다. A가 어떤 말을 한다. B가 A의 말을 옆에서 듣는다. B는 “나는 A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한다. 이 증언이 A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독립적 증거로 제시된다. 그런데 문제는 B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A로부터 전달받은 것이라는 점이다. A의 말이 사실이면 B의 증언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A의 말이 거짓으로 밝혀지면 B의 증언은 무엇이 되나. 거짓말이 전달됐다는 사실만을 증명할 뿐이다. 거짓말의 내용을 증명하는 게 아니다. 곽종근의 증언이 통화 기록으로 무너지면, 곽종근의 말을 전달받은 부하들의 증언도 자동으로 무너진다. 모래 위에 세운 탑이었다. 기초가 무너지면 위에 쌓아올린 것도 함께 무너진다. 홍장원의 메모, 원본은 어디에 11월 중순,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 홍장원 전 국정원 차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변호인이 차분하게 물었다. “홍 차장님께서 2024년 12월 3일 밤 여인형 방첩사령관으로부터 체포 대상자 명단을 구두로 전달받아 직접 작성하셨다는 1차 메모를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홍장원이 답했다. “1차 메모는 제출할 수 없습니다”. “왜 제출할 수 없습니까?” “없어졌습니다.” “없어졌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분실하신 겁니까, 아니면 폐기하신 겁니까?” “기억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변호인이 계속 물었다. “그럼 보좌관께서 홍 차장님의 지렁이 글씨를 정서했다는 2차 메모는 제출하실 수 있습니까?” “그것도 없습니다”. ”그것도 없어졌습니까?“ “예.” “그렇다면 지금 헌재에 제출되었고 형사재판 증거로도 제출된 이 메모는 정확히 무엇입니까?“ “12월 4일 오후에 보좌관이 기억을 되살려서 다시 작성한 3차 메모입니다.” “기억을 되살려서요? 원본을 보고 베낀 것이 아니라, 기억에 의존해서 재작성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홍장원은 '체포조 운영'의 유일한 증인이다>. 다른 누구도 체포조 운영을 목격했다거나 관여했다고 증언하지 않았다. <방첩사령부와 정보사령부의 관계자들은 오히려 한결같이 “체포조 운영 자체가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홍장원의 주장은 이렇다. “<12월 3일 밤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전화로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줬고, 저는 그것을 메모했습니다>“. 이재명, 박찬대, 우원식, 한동훈 등 주요 정치인 18명의 이름이 그 메모에 적혀 있다. 헌재는 바로 이 메모를 근거로 윤석열 대통령이 주요 정치인들을 체포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내란 인정의 결정적 물증이었다. 그런데 원본은 없다. 원본을 베꼈다는 2차 메모도 없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사건 발생 이틀 후인 12월 4일 오후, 보좌관이 기억에 의존해 재구성한 3차 메모와, 여기에 추가로 가필한 4차 메모뿐>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본의 실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정말로 12월 3일 밤에 메모가 작성됐는지, 그 메모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누구의 손으로 작성됐는지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없다. 변호인이 계속해서 추궁했다. “1차 메모를 작성하신 장소가 어디였습니까?” ”국정원 바깥 뜰이었습니다“. “확실하십니까?” “예, 바깥 뜰에서 작성했습니다”. 변호인이 준비한 자료를 제시했다. “국정원 본관의 CCTV 기록을 확인한 결과, 홍 차장께서는 해당 시각인 12월 3일 밤 11시부터 12시 사이에 바깥 뜰에 나가신 기록이 없습니다. 계속 본관 사무실 안에 계셨습니다.“ 홍장원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 그렇다면 제가 기억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사무실 안이었나 봅니다.” “장소를 잘못 기억하신 겁니까? 메모를 작성한 장소는 중요한 정황이 아닙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홍 차장님, 메모를 작성하실 당시 음주 상태였습니까?” 홍장원이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 “…예, 술을 마신 상태였습니다.” “얼마나 마셨습니까?”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변호인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1차 메모의 형태가 어땠습니까? 어떤 종이에 작성하셨습니까? 어떤 필기구를 사용하셨습니까? 세로로 쓰셨습니까, 가로로 쓰셨습니까? 몇 장이었습니까?” 홍장원이 침묵했다. 5초가 지났다. 10초가 지났다. 14초가 지났다. 답하지 못했다. 재판장이 “증인,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재촉했지만 홍장원은 여전히 침묵했다. 직접 쓴 적이 없으니 답할 수 없는 것이다. 종이의 종류도, 필기구도, 쓴 방향도, 장수도 모른다. 본 적이 없으니 모를 수밖에 없다. 존재하지 않는 원본. 번복되는 장소. 음주 상태에서의 작성. 기억에 의존한 재구성. 14초의 침묵. 이것이 ‘체포조 운영’이라는 중대한 혐의의 유일한 근거다. 조태용의 폭로, “오버입니다”. 조태용 국정원장도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계엄 직후 홍장원 차장에게 체포조 운영 여부에 대해 확인하셨습니까?” “예, 확인했습니다.” ”언제 확인하셨습니까?“ “12월 4일 오전입니다. 계엄이 해제된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홍 차장을 불러 확인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물어보셨습니까?" "체포조 운영이 있었느냐고 직접 물었습니다.” “홍 차장의 답변이 무엇이었습니까?” “오버입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오버가 무슨 뜻입니까?” “군 용어입니다. 그런 것 없다는 뜻입니다. 명확한 부정의 의미입니다.” 법정이 술렁였다. 계엄 직후, 그러니까 12월 4일 오전에 홍장원 본인이 국정원장에게 체포조 운영이 없었다고 보고한 것이다. 그런데 왜 나중에는 체포조 메모를 들고 나왔나? 조태용 원장의 증언이 계속됐다. “홍장원 차장은 12월 4일 저에게 이상한 제안을 했습니다. 이재명 대표에게 전화해보라고 했습니다.” “이재명 대표에게요? 어떤 맥락에서 그런 제안을 했습니까?” “정확한 맥락은 기억나지 않지만, 현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이재명 대표와 접촉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원장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즉시 거부했습니다. 정치적으로 극도로 민감한 시기에 국정원장이 야당 대표에게 전화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에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홍 차장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12월 6일자로 해임했습니다.” “해임 사유가 무엇입니까?” ”직무 태만과 부적절한 정치적 접촉 시도입니다.“ 홍장원의 행적이 명확해졌다. 계엄 직후 12월 4일 오전에는 “체포조 운영 없다(오버)”고 국정원장에게 보고했다. 같은 날 이재명에게 연락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다 12월 6일 해임됐다. 그리고 해임된 바로 그날부터 ‘체포조 운영 메모’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2023년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홍장원을 질타하는 대목이다. “홍장원 차장, 문재인 정부 시절 나한테 사람을 통해서 일곱 차례나 인사 청탁하지 않았습니까?” 홍장원은 부인했다. “그런 적 없습니다.” 박지원은 재차 추궁했다. “없어요? 그럼 내가 거짓말하는 겁니까? 증거 다 있습니다.” 박지원은 또 다른 의혹도 제기했다. “대북 공작금 유용 의혹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홍장원이 답하지 못하자 박지원은 “이 자리에서 답변 안 하시면 나중에 문제 됩니다”라고 경고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에게 약점이 잡혀 있는 인물. 계엄 직후 이재명에게 연락하라고 권유한 인물. 해임되자마자 체포조 메모를 들고 나온 인물>. <이것이 '내란' 서사를 만들어낸 핵심 증인 홍장원의 배경이다>. 한덕수, “<제가 헌재에서 위증했습니다>” 탄핵 인용의 또 하나의 축은 “국무회의 절차 위반”이었다. 그 핵심 증인이 바로 한덕수 전 국무총리다. 형사재판에서 한 전 총리는 대통령실 CCTV 영상이 재생된 뒤 이렇게 말했다. “<제가 헌재에서 위증을 했습니다>”. 그는 헌재에서 “<계엄 관련 문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국무회의에 실체적 흠결이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헌재는 이를 받아들여 계엄 선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재생된 CCTV>에는 <국무위원 11명이 회의실에 입장>하고, <계엄 관련 문건이 배포>되고, <한 전 총리를 포함한 국무위원들이 그 문건을 펼쳐보고 넘기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재판부는 “계엄을 말리지 못한 것 아니냐”, “군 동원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지 않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여러 차례 던졌고, 한 전 총리는 계엄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었음을 강조하면서도 자신이 제때 막지 못한 점에 대해 “아쉽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탄핵 인용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던 한 전 총리의 진술이, 정작 형사 법정에서 본인 입에 의해 사실과 달랐다고 시인되었다는 점이다. 이것 역시 헌재 탄핵 논리의 또 다른 기둥에 균열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헌재는 무엇을 보고 판단했나 이제 정리해보자. 헌재가 2025년 4월 4일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할 때 의존했던 세 기둥은 무엇이었나. 첫째, 한덕수 전 총리의 “<국무회의 절차 위반>” 증언. 이것은 형사재판에서 한 전 총리 본인이 "위증이었다"고 시인했다. 대통령실 CCTV 영상은 국무회의 <정족수 충족>, <문건 배포>, <문건 열람> 정황을 보여준다. 둘째,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의 "대통령이 의원 체포 명령" 증언. 비화폰 통화 기록은 부대 명령이 먼저, 대통령과의 통화가 그 이후라는 시간 순서를 보여준다. "대통령의 명령을 전달했다"는 증언과 시간상 충돌이 발생한다. 셋째, 홍장원 전 국정원 차장의 "체포조 운영 메모". 1차 원본과 2차 정서본은 사라졌고, 사건 이틀 뒤 기억에 의존해 재작성했다는 3차·4차 메모만 남아 있다. 작성 장소·상황·형식을 둘러싼 진술이 번복되면서 신빙성 논란이 커졌다. <계엄 직후 "체포조 운영은 없었다(오버)"고 (홍장원이) 보고했다는 국정원장 증언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세 기둥이 무너졌다. <헌재는 CCTV를 보지 않았다>. <통화 기록을 확인하지 않았다>. <문서 원본을 검증하지 않았다>. <증언만 믿었다>. 그 증언들이 지금 형사 법정에서 하나씩 거짓으로, 혹은 근거 없는 추측으로 드러나고 있다. 문형배 재판관이 “ 말한 대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헌재가 적어도 일부 핵심 증거를 보지 않고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을 스스로 시사하는 발언이다. 내란은 누구의 것인가? 이제 가장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내란'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 붙어야 하는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의 해제 요구가 들어오자 6시간 만에 이를 수용한 대통령인가. 아니면 위증 시인, 시간 순서와 어긋나는 진술, 원본이 확인되지 않는 메모, 이런 불완전한 증거들에 기대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끌어내린 세력인가. (국민투표)표의 주인은 국민이다. 대한민국은 국민주권주의 국가다. 국민이 투표로 선택한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릴 때 필요한 것은 어떤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압도적으로 탄탄한 사실과 증거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형사재판 기록을 종합해 보면 객관적 증거인 CCTV, 통화 기록, 원본 문서는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거나 그 의미가 헌재 판단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진술의 신빙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 상태에서도 "내란"이라는 가장 무거운 단어가 사용됐다. 내란은 처음부터 하나의 정치적 프레임으로 작동했다. 그 프레임 위에 세워진 탄핵은 지금 형사재판에서 드러나는 사실들 앞에서 중대한 하자를 드러내고 있다. 정당하게 선출된 대통령을 취약한 증거 구조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진술에 기대어 자리에서 끌어내린 행위야말로 장기적으로 헌정 질서에 더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 탄핵을 주도한 자들이 두려워하는 것 민주당은 지금 '내란 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관련 재판을 맡은 판사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벌어졌다. 사법부에 대한 압력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서둘러야 하는가. 그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윤석열 개인의 형량이 아니다. 형사재판 과정에서 기록과 증언들이 축적되며 자신들이 만든 '내란' 프레임의 실체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프레임이 벗겨지면 프레임을 씌운 자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누구의 진술을 어떻게 선택적으로 강조했고 어떤 자료를 어떻게 채택·배제했는지 모든 것이 시간과 함께 기록으로 남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위증 교사나 거짓 증언 유도, 증거 조작· 왜곡과 같은 중대한 의혹들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싸워야 한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지금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윤석열을 버려야 한다." "계엄을 사과해야 한다." "국민께 고개를 숙여야 한다." 민주당과 다수 언론이 만들어 놓은 '내란' 프레임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서 사과하는 순간 "우리가 한 말이 맞다"는 정당성을 그들에게 공식적으로 부여해주는 꼴이 된다. 저들은 상대가 고개를 숙였다고 거기서 멈추는 세력이 아니다. 사과를 약점으로 삼고 더 거세게 몰아붙인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사과 경쟁이 아니라 형사재판에서 드러난 객관적 사실들을 토대로 탄핵의 정당성을 정면으로 다시 묻는 일이다. 한덕수 전 총리의 위증 시인. 곽종근 전 사령관 증언의 붕괴. 홍장원 메모의 신빙성 논란. 통화 기록과 CCTV 기록이 보여주는 팩트들. 이것들을 무기 삼아 싸워야 한다. "내란은 윤석열이 아니라 헌정 질서를 뒤흔든 탄핵 정치에 더 가깝다." 이 프레임으로 싸우지 못한다면 보수는 앞으로도 영원히 남이 짜놓은 프레임 속에서 변명만 하며 끌려 다니게 될 것이다. 진실의 심판은 계속된다 헌재의 탄핵 결정은 법적으로는 이미 확정됐다. 현행 헌법 체계에서 이를 되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진실의 심판, 역사의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형사재판은 계속되고 있다. 통화 기록, CCTV, 증인들의 번복과 새로운 진술, 메모의 실체를 둘러싼 공방. 이 모든 것이 하나하나 법정 기록으로 쌓이고 있다. 역사는 8대 0이라는 숫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역사는 어떤 증거 위에 세워진 결정이었는지를 기억한다.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명예 회복과 더불어 이 탄핵 과정을 둘러싼 권력 남용 여부 또한 역사와 국민 앞에서 냉정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권경희 | 메가포커스 발행인 겸 대표기자, 복음언론인협회 공동대표 ~~~~~~~ 옮긴이 변 이러하더라도 섣부른 판단은 아직 이러다 (계엄의 요건 충족/불충족 내란혐의 충족/불충족) [박근혜 전대통령/윤석렬 전대통령 탄핵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분명 문제가 있다] 잠잠히 결과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보수의 분열과 와해공작은 아주 경계해야한다 정치의 좌우 한축이 무너지면 그것은 필연적 독재, 현재보다 더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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