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2월
돌아가는 길 / 손정모(21302)
그대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그대
어찌 돌아오지 않나요
그 겨울 가고
봄은 왔는데
그대 아시나요
본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나요
휙, 하고 지난 바람
바람찬 서리 얼굴
미워졌나요
이 가슴에 길이 많아서
찾지 못하나요
피땀 젖어 그을린
이 모습
그대 안 보이나요
알궂은 바람 꽃
하얀 것
분홍 같은 것
그런것 말고
이 가슴에 뜨거운
팟죽 같은 새알
곱게 품고 돌아갑니다
그대
이 두 손으로
맑은 이슬을 답습니다
아시겠지요
.
.
(얼마나
멀리 왔기에
정의로 돌아가는 길
법치로 돌아가는 길
이리도 험하고
멀단 말인가...)
~~~~~~~~~~~~~~~~~~~
민주주의를 고찰한다 / 손정모
지도자의 성비위 문제로 불거진
부산 및 서울 시장 보선 선거비용이
혈세로 치려지는데 1천억 이상
소요될 예정이다
성비위로 여권 특히 진보진영에서
거짓 부도덕 상식이외의 이탈에
내로남불 극과극고 극단의 논리
타협점 없는 정치갈등의 극심
이상한 논리로 여권5당의 합작품
선거법을 개정 개정하더니...
여당의 지방선거 압승에 의한
타협과 설득의 정치는 사라지고
못할것이 없는 의석수의 거수기 정치
이른바 다수결의 원칙의 민주의 결점을
노출 민주의 회의감
민주주의 논리보다 다수가 선점된 악법의 산출
이는 미국의 이번 대통령선거이후
갈등의 극심 의회마저 폭도들에게
점령태러당하는 민주의 상징이
수모를 격었다 이는 민주주의 최대위기
라는 정치이념과 무조건적 지지자의
과도한 행동들의 의사표시속에서
새삼 좌우사상을 검증하는 뿌리가
우리나라에는 1945년 해방이후
좌익, 우익의 심각함 폭동양상의
지리산(호남)빨치산, 빨치산 토벌...
이는 태백산맥이란 문집이나 영화를
세삼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기록 및 후대 평가에 의하면
좌익은 빨갱이(공산주의 신봉) 은
우익은 자유민주로 극단 표현됨
현재 좌파, 우파. 진보좌파, 보수우파,
등 세분되기는 하지만 이는 이념적
사상을 얘기하고 여기에 철학적 삶이
개입되어 있다 물론 정치적이기는 하나
삶의 근간을 표현한다
여기에서 삶의 근간은 철학을 아루지만
철학보다 사상 이념보다도 니편내편의
논리의 지식보다 무식의 힘이 발출된다
즉, 지식적 논리로 설득보다 지식을
배제한 무식의 힘의 패거리 정치를
신봉한다 그것은 진리보다도
거짓선동에 의한 폐해가 상존한다
호남이라는 괄호를 표기를 한 것은
당시 지리산 빨치산의 논리는
호남곡창지대에는 소작농이 많았고
그 피해 심리 즉 토지개혁을 이용했다
공산주의 요체이기도 했다 다만 방법과
체제를 달리할 뿐이라고 인식된다
당시 해방후 나라전체가 혼란기였고
그 피해가 호남에만 존재한 것도 아니다.
민주화 운동이 호남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듯이
물론 시발과 종착, 피해정도 차이는 존재한다.
8.15 해방,대한민국수립, 6.25전쟁,4.19혁명,
5.16혁명,10.26, 12.12, 등 변천사에는
우여곡절의 과정을 함축하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과 과정들이
과거 및 미래를 함축하고 있기에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삶에 있어 방법론은 좌,우 이념이나
사상보다도 삶은 진실하고 숭고하다
여기에 즉, 내 삶에 비리가 끼어들고
불법과 탈법, 비상식, 비도덕,윤리가
더렵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그것은 삶은 숭고하기에 정도를 걷고
이탈이 있었다면 회개와 반성으로
정도를 걷고자 하는 것이 삶의 숭고한
정신이다.
나도 별 달았으니 너희들
전부 다 별을 달아야 공평하다가 아니다.
이는 수렁에서 건진 내 딸
또는 종교적 논리와도 다르다
신념은 삶에 충실함을 남기기 위해서
잘잘못을 기록한다. 이것이 역사이다.
본대가 있다 교육은 그래서 중요한 가치다
물론 이념과 사상도 중요하다
삶의 가치를 숭상하는대는
공산주의의 좋은 점도 가져오고
민주주의 나쁜점은 버리고
취사선택의 자유 이자유가 보장된
개인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
이것이 민주주의의 요체이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라고 표방한다
이 자유에 개인의 재산권이 표함되어
있다
그래서 개인의 재산권이 보장된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이다
물론 민주주의에 개인의 재산권이 표함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자유의 요체는 공동이 아니라
개인이다 이 개인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 것을 자유라 한다.
국가체제의 이념과 사상은 헌법으로
명시된다 .이를 지키기 위하여 수많은
종류의 하위 법령이
이 헌법을 떠 받들고 있다.
이는 국가수호가 기본이다.
국가를 수호한다는 것은 헌법을 수호
한다는 것이다.
국가체제에 없는 법률이
무소불위의 법령에 의해
국가를 수호한다는
의문에서 출발한 현사태의 자문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서
과연 옳
올바른 결단인지
민주의 역행 독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좌우의 혼란 토지개혁에서 부터
임대인과 임차인 갈등, 불만 등이
과도하면 개혁 또는 혁명을 유발한다
다행이 코로나 19로 의사표출의 행동이
자제되어있다.
그렇다고 벼락거지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앞으로 무엇으로 해결될 것인가.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해결은 가능할
것인가 이 물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비헌법적 발상의 요체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즉, 재개발법은
개인 사업자에게 국가의 권능인
토지수용사용권을 주었다.
여기에 수많은 지원법령이 존재한다.
이를 위해 공법,공정하게 적용,
불만을 최소화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위하여 이의절차 및 행정절차를
거치도록하였다.
이것이 해당 사업자가 주민과 협의절차,
행정절차(인허가절차,토지수용절차,
행정심판절차,행정소송절차)
거치도록 되어있다.
이것이 과연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는가.
형식적인 거수기 방법이 아니면
불법한 인허가를 거르지 못하였는가.
민주 법치의 근간인 3심제를 거치기도
전에 1심 만으로 개인의 토지가
강탈될 수 있는가.
사거리 카도집과 골목길 집과 공정한
감정평가가 이루어 졌는가
3억5천 평가 집은 불만족 법적 대응을 하고
2억5천 집도 법적 대응중 합의로
1억 올려 3억5천 받았다.
재개발이 다수결의 성사로 이루져도
사거리 카도집은 진정 불만족 해소
없이 강탈 퇴거되고 사업지연 손배소까지...
횡포는 지주와 소작농의 비교횡포와
국가권력의 헌법적 비교횡포는
분명 반헌법적이라면 그 하위 법령은
국가 근간의 표상을 흔드는 것이다.
재개발이 로또가 되고,
벼락거지가 되는 세상,
원주민이 이를 감당 정착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원주민을 위한
재개발은 아닌것이 자명하다.
왜 좌우익 논리가 삶의 현장에서 먹혀들까
이는 표를 잡기위한 현실 왜곡 수익
즉, 부자된다는 희망수익,
희망고문 후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덮는다.
이 갈등에 있어 정치적 현상을 보면
파는 개인의 소리를 직접 들었고
우파는 구의원, 시의원, 단체장,국회의원,
나몰라라 하는 현상을 체험했다.
좌파는 듣기는 하나 공격의 빌미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우파는 해결 방법이 없으니
니가 알아서 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의 공약은 헛소리일
뿐이다. 무엇이 국민을 호도하는가
바로 표가 거짓됨의 진실이다.
작금의 국회는 좌파 좌지우지한다
우파는 어떠한 방법도 없다
국회의원이 내 소리를 정말 내고 있을까
지소리 내고 있는 것이지
그것은 국가차원의 미래도 없고
헌법도 지킬 의무도 상실한 자기뿐이다
각료 어느 한사람 먼지 없는 사람있든가
과거의 행위에 대해 진실한 사람이 있든가
진정으로 반성하는 잔정성이 보이든가
돈은 어디서 나오는가 개인의 재산이다
정치는 무엇으로 하는가 돈으로 한다
표는 무엇으로 얻는가.....
표는 개인이다 그것이 다수표가
되었을 때 선택 받는다.
부자는 소수이나 돈이 많다
표는 다수이나 돈이 없다
즉, 둘의 조화가 없이는 선택은 불가하다.
위법은 눈을 감았다는 것이다
눈감고 인허가 했다는 것이다
눈감고 선택했거나 선택 받았다는 것
여기에 무슨 철학이 존재했겠는가
안목은 무엇에 필요한가
당신의 배운 지식 당신의 삶을
송두리체 거짓으로 만드는 저 오랑케를
나는 닮아야 복수가 가능한가
한번쯤 되물어 보아야하지 않겠는가
아님 바보천치로 길바닥에 나앉아
비렴뱅이 생이나 즐겨야하는 가른한
삶을 후세에 되뇌이던지.....
202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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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정직하다 / 손정모
2012.2.2.
정직한 삶이 비웃음 꺼리가 된지 오래다
청념이 존경이 되는 사회에서
존경이 없는 것이다
아직도 남아 있다면
글의 서두에 말 꺼내기로 입에 발린 글귀로
그 명맥을 유지한다 우리의 호프(!)강용석 의원이
박원순 시장에게 존경하는 어쩌고 저쩌고
압박의 강도로 나꼼수의 이상한 지지자의
성희롱 등을 살펴보면
정의로움을 희대의 조롱으로
가치(!)를 희색한 존경이다
존경사회의 초석
스승도 선배도 눈 앞에 서성일 때
잠시 스치는 바람같은 정직이고 존경이다
이 바람은 눈 인사도 없어진지 오래다
학생선도위원
청소년선도위원이
허울뿐인 선도
유흥계 폭력계 인사의 짜고 치는
편법의 달인을 보아왔다
교복을 입어면 학생이고
벗어면 일반인이다
나이도 조작 작위하고
주민증도 학위증도
정상보다 허위가 더 위력을 부리는
돈이 검증이고
검증이 권력이된 사회
세상 어디에 존경을
부를 공정이 존재하는가
체육계 학계 부정과 폭거
스포츠 승부조작
끼워넣기 편법주거
스포츠정신 마저 희룡하고
신성한 교육마저
폭력조직의 논리가 삽입되고
살벌한 경쟁에
희생당하는 목숨 순결이
사망하는 논리가
제 발로 스스로 바쳐 올렸다
우리의 호프(!) 나꼼수 마저
세상의 정의에 보탬은
존경해야 하나 존경할 수가 없다
신페악의 존재에 대해
순수보다 구악의 본질에 가깝기 때문이다
강용석의 정직과 선의의 현상발언에 대해
악이 표면화된 굴절이
정직한 발언을
입에 담지 못하게 휘둘려 온 폭력이다
이의 항거는 존경애 대한 글귀의 몸부림이다
정봉주의 몸부림속에 그 정의로움도 살아있다
강용석의 고독과 정봉주의 외로움은
질적 양적으로도 생명력을 달리한다
고도화 지능화된
편법 탈법 비양심 부도덕 비효율에
습관화 익숙화 보편화 속에서
진화하지 못한 정직함과 존경심만
타락시킨 비민주주의에 반기를 들라
그 중심에 사법이 있고
종교 있고 권력이 있다
그들 앞에 삶은
너무나 정직하여
오늘에 삶이 그 영혼이 피폐해 있다
모두가 피페해 있는 곳에
민초는 더더욱 갈망한다
너의 100억이 나의 100만원이다
너가 1억으로 강빨 잡을 때
나는 1만원의 가치를 존중한다
그것이 내 삶의 정직이고 나의 가치이다.
(2021년2월2일에 이 글 다시 보니
변증법이 참 고착화되었다.
정의의 탈을 쓰고 양화를 빌미로 악화된
변증은 지금도 화려하게 진행중이다.
그 때도 긴가민가 지금도 긴가민가를
이끌고 있다.
악이 얼마나 화려한가 눈이 부셔
똑바로 볼 수가 없다
선이 얼마나 초라한가
정의는 더 초라하다
그러니 한푼어치도 볼품이 없다
거기다가 일푼어치 돈도 안된다
사실 부자는 검소하다
눈 앞의 가치가 아니라
선의는 현재의 가치이고
정의는 미래의 가치다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 현재 가치가 제로이다
그래서 일푼어치의 돈이 안된다
그러니 적자다 내 돈과 시간을 바쳐야 한다
이것은 의식이나 사명감을 주지하지 않으면
불가능이다
그래서 악화나 악의 화려함에 패배한다
그러나 정의는 살아있고 영속한다
악의는 순간순간 변질되어 새로운 악화를
구축한다
정의의 승리가 신속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또한 양심이라는 것이
자기 합리화에서도 이질된 양상이 있으나
그 못된 것이 무덤까지 가져간다니
무어 할 말이 더 있나
서울시장 자살 그것이 미화되고
무덤까지 따라갈 일인가
그 만큼 굳어지고 참 많이도 진보되었네
악이 이렇게 굳건하게 현혹하는데
선이 바로 서고 정의가 폭포수처럼
힘차게 줄기차게 도도하게
잠잠히 생명수로 흐르는 목마름을
더는 애태우지 말자
사람이 살아있는 한 생명수는
멈추지 아니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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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여 / 이연실
그대도 가끔씩 달빛 뒤집어쓰고
입술 깨물며 흐느껴 우는구나
밤새 어깨 들썩이며 눈물 흘리다가
아침이면 부은 눈 비비며 다시 일어나
마음 둘 곳 없어 수평선까지 갔다가
영혼의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다가
저물녘이면 노을빛 덮어쓰고
속울음 삼키며 홀로 잠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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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 111 / ㄱ김효영
1.
누구라 말해도 되겠지만 편의상 ‘그 분’이라 한다.
그 분은 그날 오후 3시에 어느 포럼에서
발제를 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 분의 거처는 지리산 골짜기 움막.
오늘 이야기의 발단은 그 분의 고물차다.
2.
그 고물차가 말썽을 일으켰다.
아침 10시에 하동 읍네 1급 정비소를 찾았다.
정비사는 2시간이 되도록 원인을 찾지 못했다.
포럼 장소는 차로 2시간 거리.
남은 시간은 3시간.
‘우짜면 좋겠소?’
‘아무래도 이 차 서비스센터로
가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3.
다행히 하동 읍내에 센터가 있다고 한다.
덜덜덜덜... 끌고 가니
점심 먹으로 가고 아무도 없다.
사무실에 혹 연락처가 있나 보니
폰 번호가 눈에 띄었다.
전화를 해 하소연을 하니
‘사장님, 그거 별거 아닌데요.
이리 저리 한 번 해 보이소,
그러면 바로 고쳐집니다.’
하는 게 아닌가.
정비사 말대로 이리 저리 했더니
거짓말처럼 고쳐졌다.
"알고 보니 아무 것도 아니었다!"
포럼 시간에 딱 맞추어
도착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4.
‘그 분’은 포럼 발제 도중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이렇게 차이가 크다‘고 했다.
더욱이 그 날처럼 일정이 잡혀 있는 날은
1분 1초가 황금보다 귀하다.
시간이라고 그 값이 다 같은 게 아니다.
5.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에 대해
우리는 평소에는 민망할 정도로 둔감하다.
굳이 몰라도 밥은
별 일없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식들은
아버지가 어떻게 해서
매월 월급이라는 것을 타 오는지 모른다.
자기가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되어
어떤 산고를 거쳐 태어났는지 모른다.
몰라도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데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6.
그러므로 사람들이
무언가를 알 때는 항상 늦은 때이다.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
제 아버지의 삶이
희끄므레 피부에 와 닿을 때
아버지는 이 세상에 없다.
우리가 안다는 건 대개 이런 식이다.
때늦은 앎은 아나마나다.
7.
그래서 미리미리
앎이라는 부대를 채우는 일은 중요하다.
노년이 되면
그 부대가 채워졌는지
아니면 훌쭉한지 여부가
그 사람의 삶의 질을 좌우한다.
세속적인 조건들,
이를테면 건강, 돈, 배우자, 친구,
소일거리는 그 다음이다.
8.
앎은 대개 머릿속에 저장되는데
머리 달고 다닌다고 다 같은 머리가 아니다.
머릿속이 온통 똥이나
쓰레기로 가득 채워진 사람도 수두룩하다.
그런 사람일수록 그
위대한 머리를 더 치켜들고 다닌다.
어디 어디 가면 온통 그런 사람 투성이다.
모르면 용감해진다는 말이 실감나는 부류다.
9.
앎이 발효되면 감성으로 승화되고
가슴으로 이동하여 저장이 된다.
그 가슴에서 인간다운 모든 것이 나온다.
그러나 가슴 달고 다닌다고
다 같은 가슴이 아니다.
너무 작아 아무 것도 담을 수 없는
새鳥 가슴도 수두룩하고
옆으로 기는 게 가슴도 수두룩하다.
그런 가슴 달고 다니는 사람일수록
더 선한 얼굴을 하고 다닌다.
10.
마릿속에 든 앎과
가슴속에 든 앎을
합친 것이 지혜다.
앎이 발효가 되어야 지혜로 변한다.
지혜는 통찰과 같은 말이다.
독수리처럼,
요즘은 드론처럼 하늘에 높이 떠서
한 눈에 지상의 모든 것을
들여다 보는 것이 통찰이다.
그런데 우리는 평소 어떻게
사안과 사물을 보는가?
옆으로 기는 게처럼 본다.
11.
無知와 知는 그러나, 불과 종이 한 장 차이다.
그 차이가 시간이 지나면
하늘과 땅 차이로 변한다.
그 차이가 처음에는 멀쩡했던 인간을
어떤 인간은 사람의 길로,
또 어떤 인간은 짐승의 길로 가게 만든다.
그러므로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무서운 것이 앎과 無知의 차이다.
~~~~~~~~~~~~~~~~~~~
◆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 222 / 김효영
1.
산에 너무 한 그루가 있다.
나무 줄기에 작은 구멍이 나 있다.
그 구멍으로 바람이 통과하면 소리가 난다.
부드럽게 통과하면 퉁소 소리가 나고
세게 통과하면 귀신 울음소리가 난다.
산 아래 동네 사람들은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은
귀신이 그 산을 에워싸고는
슬피 운다고 믿었다.
그런 날은
산 가까이 얼씬도 하지 않고
집에서 벌벌 떨었다.
2.
모르는 것과
두려운 것은
이렇게 일치한다.
알면 두렵지 않을 일도
모르면 두렵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이렇게 천양지차를 만들어낸다.
그 대표적인 것이 죽음이다.
죽음과 공포는 늘 함께하는 어깨동무와 같다.
3.
죽음이 두려운 것은
죽음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무지는 왜곡을 낳는다.
왜곡은 환상을 낳고
환상은 믿음을 낳는다.
무지가 믿음으로 변하면 대책이 없다.
이를 狂信이라고 한다.
광신은 구원 또는 구제로
가는 길을 막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4.
그렇다면 나는 죽음이 뭔지,
어떤 건지 알고 이러나?
알렉산더가 물었다.
“삶과 죽음, 어느 것이 더 강한가?”
알렉산더가 인도를 침공했을 때
붙잡아 들인 나수자裸修者에게 한 질문이다.
나수자가 대답했다.
“삶이 더 강합니다.”
“왜인가?”
“삶은 무서운 고통을 견디게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대화를 통해
삶이 무언지 알았고
동시에 죽음이 무언지도 알게 되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고
삶에의 의지가 생겼다.
그때가 IMF환란 한 복판이었다.
나도 그 당시 죽음 가까이에 갔던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다.
5.
죽음은 공포가 아니라
축복임도 알게 되었다.
죽음이 축복이라면
삶 역시 축복임도 알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무지에서
나는 그렇게 벗어났다.
사람이 알아야 할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앎은
삶과 죽음의 정체에 대한 앎이다.
6.
그 다음에 알아야 할 것은
‘나란 무엇인가?’에 대한 앎이다.
자신을 아는 것이
다른 모든 것을 아는 출발점이다.
불교는 오직 이것 하나 알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나면 다 알게 된다.
무지의 그림자가 다 사라진다.
그것이 해탈이다.
7.
해탈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해탈 후에도 여전히 사람은 먹어야 살고
잠이 오면 자야하며
똥이 마려우면 싸야 한다.
달라진 건 오직 하나
내가 누구인지,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이다.
내가 왜 사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안다는 것이다.
8.
사실, 그런 거 몰라도 산다.
대부분은 모르고도 살아간다.
모른다고 입으로 들어오던 밥이
끊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는 자나
모르는 자나
평소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은
앎이 갖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성자도 먹고
개, 돼지도 먹으니까 다 같은 줄 안다.
영웅의 하인은
그 주인이 영웅인줄 결코 모른다.
세상사가 평온할 때는 모른다.
주인이 영웅인지,
남편이 성자인 줄을.
9.
세상사가 늘 평소 같이만 진행되는가?
뉴스를 들여다보면
온갖 일들이
매일매일 한 보따리씩 풀어 젖혀진다.
내 살아 보아온 것만 하더라도
5.18부터 IMF환란, 전직 대통령의 자살,
광우병 사태, 세월호 사태, 현직 대통령의 탄핵,
코로나 공습 등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10.
세상사는 眞과 妄이
重重無盡으로 얽히고설켜 있다.
대개는 본질은 숨고
가짜가 판을 친다.
무엇으로 그 眞과 妄을 분별할 수 있나?
앎이다.
그냥 앎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앎이라야
迷妄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
◆ 중국이 부러운 점 세 가지 / 김효영
1.
첫째, 기록이다.
중국의 기록물은 우리나라보다
대략 1,700년이 앞선다.
중국 最古의 기록물이라 할 수 있는 《
黃帝內經》은 기원전 475년 경에 편찬되었으니
무려 2,500년 전 기록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
삼국사기는 1175년에 편찬되었으니
황제내경보다 1,650년이 지난 뒤 일이다.
그러다보니 한국 고대사
즉, 삼국시대 이전 역사는모조리
중국 역사책 속에서 찾아야 나온다.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1-1.
漢字는 殷나라 시대의
갑골문자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인데
오늘날 한자의 原典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기원전 200년 경 秦나라의 승상
李斯가 정리했다고 한다.
그때가 벌써 2,200년 전이다.
그 후 기원전 108~91년 사이에
사마천이 불후의 명저 사기를 저술했는데
삼국사기보다 무려 1,166년이 앞선다.
1-2.
조선에 들어와 왕조실록이라는
공전불후의 기록물이 있지만
그 외에는 기록이 없기는
고대시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현대라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2.
둘째, 넓은 땅이다.
人傑은 地靈이라고 했다.
징기스칸이 한 때
지구의 절반을 호령했던 것은
땅의 넓이와 관련이 있다.
민족적 스케일이란 것이 있다.
나는 그것이 땅 넓이와 비례한다고 본다.
2-1.
오늘날 큰소리 뻥뻥치는 나라치고
땅이 손바닥만한 나라는 거의 없다.
영국, 이태리가 있지만
다 알지 않는가.
한 때 어마어마한 땅을 가졌던 나라였음을.
흥미로운 것은 영국,
이태리가 땅이 좁아들자
스케일도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2-2.
땅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것은 《
삼국지》라는 소설이다.
삼국지의 무대는
위, 촉, 오라는 삼국이다.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삼국의 땅은 한반도보다
최소한 10배는 더 컸다.
그렇게 너른 무대가 없이
그렇게 큰 스케일의 소설이 나올 수가 없다.
땅이 넓고 커야
영웅도 희대의 간신도 나오는 법이다.
그래서 地靈이 곧 人傑이라 한 것이다.
2-3.
가끔, ‘한국인이 중국과 같은
너른 땅을 가진 나라라면?’
하는 상상을 해보다가
내 다리를 내가 꼬집고 만다.
한반도도 넓다고 반을 갈라 싸우고
그 반도 또 반으로 나누어 싸우는 나라가
땅이 넓은 들 무슨 소용!
이랬든 저랬든
땅에 관한 한 중국이 부러운 건 사실이다.
3.
셋째, 짬뽕 근성이다.
50여 소수민족과 함께 잘도 산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림도 없다.
화교가 맥을 못추고 사는 유일한 나라가
우리나라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는 같은 동포인 조선족에게
갑질을 서슴치 않는 족속이다.
중국이 티벳과 위구르 족을
탄압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우리 같으면 아마 중국보다
더 악랄하게 했을 것이다.
북한을 보라.
악랄의 극,
그게 우리민족의 본성 중의 하나가 아니라면
그 본성을 어디에서 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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