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Newly)

(18015~17) 주마등 / 손정모

intervia 2018. 7. 31. 14:45
      마법의 성자들이여 / 손정모(18015) 마법의 성 아파트 이곳저곳 눈 둘곳 없이 하늘 향해 두 팔 벌여 오른다 황금 열쇠는 장식용이 아니다 저 높은 곳 문을 열면 공든 탑이 무너진다 한 순간 말문이 막힌다 가만히 있어도 말잔치는 하늘을 오른다 아무리 숨겨도 아리다운 몸매 염장의 문소리 가슴을 아린다 누구나 실수를 탓하지 않는다 과보다 실보다 공이 많다고 하루 종일 염불을 외워 올리면 아, 잠들면 향불 논두렁 개소리 들리듯 보이듯 그리워 한다 마법의 성자들이여 피땀을 훔친 드라큐라의 입으로 법전을 탐한 자의 변명 잔치국수 시린듯 아린듯 자꾸만 오른다 저 높은 곳을 향한 망치소리들 이제는 들리는가 잠오는 밤 별과 달은 숨밖꼭질 하듯 구름 위에 셧네 아, 목마의 울음소리는 언제나 하늘가는 길목에서 노자를 받고 목맨 자들과 떨어진 목숨과 연이어 오는 길동무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 헛소리 / 손정모 (18016) 한소리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그러면 저놈 미친놈하고 피한다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을 새기고... 그랬다면 또 그소리 또 그소리 그러러니 아입니다요 모르는 소리 뭔소리 또 보고 듣고 그러다보면 알게되거나 식상하거나 도가 통합니다 한 풀이 맞습니다요 자신의 용서와 맺힌 한 사이에는 잘잘못 보다 자기 존재의 가치 그소리를 알고 보면 영혼의 소리 가까이도 멀리도 아닌 나와 이웃과 부모님과 아이의 옹아리 한세상 여는 소리와 닫는 소리 무어 시답지 않는 글을 쓰고 그런 놈이거니 아니 올씨다 뱁새가 되고 황새가 되고 숲속 오솔길에서 만나는 그놈의 소리 이소리는 그냥하는 소리가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 잠시 불려주는 고향의 소리입니다 그 소리를 내는 유일무일한 헛소리 달인입니다 오호 푸르다 더 높다 너는 어이 이곳에 남아 길을 가느냐 ~~~~~~~~~~~~~~~~~~ 주마등 / 손정모 (18017) 마을 초입에 서있다 이젠 버스정류소도 있다 정자나무는 그냥 서있어도 실개천이 흐른다 읍내를 지나 배춘 신기 양동을 지난 다음 실디 삼거리 가라골 고향마을 울동네 버스는 가고 오지 않는다 기다리다 지친 눈 하늘가에 소낙비가 내린다 실개천은 야호하며 소리내어 흐른다 마을 초입 삼거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지나가고 아버지 어머니가 또 지나가고 형님 누나 형수가 지나간 다음 하늘은 맑게 개였다 소낙비는 흔적도 없이 매떵거리에 마을회관을 세웠다 큰 집은 재실이 되고 작은 집은 십자탑이 높이 서 있다 오지않는 버스가 지나갔다 그림자를 두고서 떠난간 버스 그 뒷 모습이 아련하다 고향떠난 버스와 손 이별하는데 저 멀리 어머니가 달려오신다 . . . (......................................... 부르는 소리 들리시나요.......) ~~~ #가라골(추동), #두름, #밭두, #관리, #웅동(곰골),#자보실(선산), #금곡,#장전,#구암....... 저 멀리 어머니가 달려오신다 저 멀리 어머니가 달려오신다 (......................................... 부르는 소리 들리시나요.......) . . . ~~~~~~~~~~~~~~~~~~~ ~~~~~~~~~~~~~~~~~~~ 별이란 천만원 /손정모(13037) 흐린날 별이 아린다 가슴속에서 솟아나는 푸른 별빛은 잃어버린 사랑이다 혹성을 떠나 항성에 머무는 내 눈빛은 아주 작은 가슴에 큰 돌이다 1등성이 못되어 잡히지 않는 kr13037 천체 나의 별이다 주인 없는 별빛이 너무 예쁘다 찬란한 밤을 기다리는 그대에게 나는 무엇이 되어 그대에게 가리 잃어버린 눈물을 찾아 오늘 밤이면 그저 바라볼 수 있는 그대들의 꿈 같은 행복이고 싶다 밤하늘의 별이고 싶다 가슴가득 채워지는 이름 천만원 그런 별이고 싶다 ~~~~~~~~~~~~~~~~~~~~ 그물코 / 손정모(17019) 성실하면 영광의 날이 올 줄 알았다 노력하면 배불리 살 날도 올 줄 알았다 내 코가 석자인 지금 돌아 보니 내 그물을 탓하기 보다 목이 메인다 화려한 날은 가고 젊음도 시든 지금 배가 아프다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고프다 무거운 짐은 어깨 위에서 용서하라고 외친다 코가 비틀어 진다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물의 저항이다 힘든 삶이다 너무 많은 욕심이 아니다 가만히 보니 법꾸리지 기름장어... 장관급도 대법관도 다 빠져나가는 헐렁코 대어는 다 놓치고 피래미만 잡는 그물코 고기들의 저항보다 물의 저항이 더 높아 높이 오를 수도 빨리 달릴 수도 없는 엔진 세상의 모든 짐이 너저분하게 소리친다 콧김이 난다 단내가 난다 목이 마르다 소달구지와 마차가 신작로에서 달렸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를 들고 아이들이 노래를 불렸다 각설이 타령에 흙수저 1등 흙가마 2등 은가마 3등 금가마 그게아니고 1등은 코걸이 2등은 목걸이 3등은 가락지 그물코는 누렁이의 코걸이 목걸이는 개줄 가락지의 약속 금가락지 아니 다이아몬드 사다리 게임이 끝나자 눈가리고 숨바꼭질 그래도 이쁜애들은 벌렁코라 잘도 고른다 애들은 무대에서 철없이 노래를 부른다 이제 등수는 그만..... 성실하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재주를 그들은 안다 내 코는 그런 재주가 없어 자꾸 비틀어 진다 ~~~~~~ 콧구멍이 좁아서 숨쉬기도 어려운데 코평수 늘리지 못했다 사고 파는 재주도 없었다 노락질 더더욱 못했다 다아 없는 복이다 복타령이나 해야지 뭐 설명이 안되니까 이유도 없다 못 번게 죄다 아이구 ㅂㅅ ~~~~~~~~~~~~~~~~~~~ 빛나는 눈물 / 손정모 내 말없는 울음이 눈물로 흘려 푸르른 나무에 햇빛 반짝이는 어둠이 밝아 무지개 되었으면 별빛도 달빛도 부렵지 않겠네 깊은 숨소리 가슴에 남아 입김 가까이 하고 싶은 말 별빛이라한들 달빛이라한들 은하의 강 반짝이는 메아리 어울림 소리보다 못한 서러움 내 가슴에 강으로 흐르는 피보다 진한 눈물이라한들 메마른 땅 가슴터는 생명 이슬맺혀 흐르는 강으로 시름 깊은 숨소리 녹인다 꽃상여 요령소리 멤돌아 그 누구의 강가에 쉬었네 별빛도 곱고 달빛도 곱네 떨어지는 눈물 꽃잎도 곱네 그 가슴에 피는 울음도 곱네 시이 가는 밤 별빛도 떨어지네 ~~~~~ (몇날몇일을 잔디씨를 채취하고 말린 뒤 잔디씨를 발랐다 노동력과 수고로움과 정성 내게는 소중하고 귀한 값어치다 가성비로 보나 감평으로 보나 1만원쯤의 씨앗일 것을 아니 그 자식이 아닌 손자들의 눈에도 그려할진데 하물며 한다리 더 건너면 그게 은하의 강나루 너며 별빛 쏟아지는 아픔 그 고통의 한 자리도 삶은 이리도 고운 눈물의 강이다 부질없다 한들 청개구리 마음도 그 울음소리도 정겹다 싹을 틔웠을까 푸르른 들판에 누워 구름에 달가듯 마음도 익어 너희와 함께할 그날 손 꼽아 기다린다) ~~~~~~~~~~~~~~~~~~~ 天道의 눈물 / 손정모(16018) 별이 흐르든 강에 물장구치는 날에도 남자의 손에는 눈물이 없다 갈비 뼈 사이에도 없다 어느 듯 자정을 넘어 별을 헤어보는 시간에도 무수히 떨어지는 별똥별 한 소원도 풀기 어렵다 오랜 시간 거슬려 올라 조부모님도 부모님도 눈물 없는 하늘 아래서 사막의 길을 건너 왔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 하나 가만히 속삭여 길을 묻는 그 목소리 울음 같은 기억만 가슴 한 편에 남아 있지 않는 모진 시간의 흐름도 기억할 수 없는 강이 있다 그 강에는 수많은 눈물이 모여 은하의 숲으로 천년을 흐른다 다섯 줄기 남자의 강은 희미하다 세 줄기 여자의 강도 가물거린다 천년의 강을 건너 겨우 들어다 보는 아버지의 강도 눈물이다 어머니의 강도 눈물인지 메마른 가슴이 울렁거리고 맞잡은 손은 거칠게 따독인다 한 손에 침을 바르고 다시 잡은 손 이제 좀 안심이 되는지 다시 길을 간다 손금사이로 천년의 기운이 흐르고 비바람도 천둥도 손바닥에서 울었다 갈 곳 없어 멈춘 눈물도 남자의 애간장은 검게 탄다 푸른 별빛을 벚 삼아 사막을 건너 강물은 그림자같이 흘러 눈물의 바다 조부모님의 아버지의 어머니의 강물 이 많은 은하의 강 별들의 눈물인 것을 바다에 도착한 다음 흐릿한 별빛도 가물거리든 울음도 폭풍에 무너졌다 ~~~~~ (이 나이에 누나 앞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남자는 울지 않는다고 대대손손 배워왔다 마음으로 울고 땀으로 울고 얼마나 많은 눈물이 그 눈물이 강이 되고 바다가 되었는지 그것이 하늘가는 눈물인 것을... 닮고 닮은 그 모습에서 그 보고픔이 사무쳐 폭풍에 무너져 울고 싶은 날이 왜 없겠는가 아이가 울면서 커 듯이 아비도 눈물로 이 길을 가고 있다) ~~~~~~~~~~~~~~~~~~~ 뜨거운 안녕 / 손정모(13038) 작열하는 태양 나무그늘 아래서 온전이 태우지 못하는 땀방울의 미소 흐릿해지는 낮과 밤 너무 양지에 울지마라 더운날 음지도 불빛에 춤추는 열정이 있다 죽은 자의 밤은 산 자의 부름이다 산 자에게도 낮밤은 무섭고 두려운 비명이다 그대의 천국에서 땀 흘러 내려 온 유구한 노래 빨간 하늘높이 푸른 융단 살픈이 내려 오시라 무지개 뜨는 시원함으로 속시원히 내려 오시라 저 미구의 외침 녹슬기 전 너는 나의 삶이고 꿈이고 영광이다 어젯밤 꿈에도 멋떠러진 외침 자유는 숭고한 절차이고 땀은 진실한 사랑이고 보람이다 누군가 저 별빛에 밤세워 시를 쓰고 누군가 저 뜨거운 태양 아래 깨끗한 심판이 되자 국민이 되고 선량한 이웃이 되어 그 어디든 속 시원한 여름 추억이 되자 한 여름 밤에도 달콤한 가족이 되자 ~~~~~~~~~~~~~~~~~~~ 중복날 아침에 / 손정모(17020) 삼복더위에 지쳐 앞집 검둥이도 입을 닫았다 중복날 아침에 검둥이가 짖기만을 기다리는데 그만 더위를 먹어 혀를 쏘옥 내밀고 그늘 계단에 누웠다 빨리 짖어봐라 그 잘난 말문을 열어 왕왕 짖어라 언제 날 잡아 벌초 가기도 힘든데 우거진 숲속에 매미소리 들리겠지 애들아 시골 한번 다녀오자 그래야 하지 않겠니 영영 말문을 닫아 혼자된 메아리 앞집 검둥이는 그 소리 듣고 모르는 척 혀를 쏘옥 내밀고 숨소리만 들랑날랑 콧바람 친다 세상 좋아 짖지 않는 누렁이가 좋고 팔자 늘어지니 검둥이 세상 오늘이 중복인데 영 개가 안 짖네 잠 못 이룬 날 새벽 시골 장닭은 꼬꼬덱 하고 울겠지 삼복도 더위도 지쳐 늘어진 밤에 벌초는 언제할꼬..... 검둥이도 누렁이도 못 본체 별 빛만 줄줄이 떨어지고 왕왕 짖어 보면 탈난다고 앞집은 눈치도 없이 개똥만 치우고 쏘옥 들어가면 검둥이도 따라서 입 쓰윽 닫고 자는 척 한다 (그 잘난 말문을 닫았다) ~~~~~ 산소 돌보는 것이 이리 힘든 줄 모랐다 형들 있을 때 잘할 걸 아쉽고 후회스럽다 너무 더워 잔듸, 수목 다아 목말라 타지는 않았는지... 몸은 타향에 있어도 마음은 늘 고향산소에 있다 날(생) 청개구리 그 마음 우화의 진실이 통곡하는 밤이다 ~~~~~~~~~~~~~~~~~~~ 설익은 수박 / 손정모 (13039) 5월은 푸른 고도의 씨앗을 내리고 무릉도원의 결의로 잎을 키워 낸 따뜻한 갈매의 품을 보았습니다 꿈에 그 목소리 못 잊도록 갈고 딱고 빛이 나는 광체 그 눈빛에 녹았습니다 황홀경에 취한 그리움도 가두어 둔체 나만의 외로운 산책 담고 담고 온 길 그 황토길에는 이름모를 꽃이 아주 많이 옹기종기 피었습니다 긴 줄기를 이어가며 열매 맺기를 오늘 오월의 씨앗을 맛 보았습니다 아주 크고 둥근 그럴듯한 열매를 개봉 했습니다 하얀 속 씨앗 없는 깨끗한 너무도 순수 했습니다 하얗게 질러버린 그 순간에도 두어달을 자위하며 세달이면 빨갛게 익어가는 맛 있는 수박을 이 뜨거운 열정으로 사랑합니다 ~~~~~~~~~~~~~~~~~~~ 남과 남 사이 / 손정모(16019) 남과 남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가깝고도 먼 거리를 간격이라는 조율 잣대는 늘 심오한 말이 오간다 지구 반대편의 거리도 대화자의 가까움에 현금은 찰라보다 빠르게 간격을 무시한다 현혹의 순간은 정말로 황홀하다 남과 남 사이에는 우리가 있고 친구가 있고 그럼에도 늘 혼자 마침표를 찍었다 나도 찍고 너도 찍었을 사이의 간 붉었다 . . . 남과 남 사이가 얼마나 가까운데 너는 알기는 아니 남과 남 사이가 말 못할 사이라는 걸 눈 뜨면 보이는 것 거기 필요한 단어 간격 꽉 찬 숨소리 얼마나 사랑했는지 몰라봐도 돼 뒤 돌아 보지 않아도 돼 성공하고 잘 살아야 돼 우리가 없어도 돼 친구는 원래 없었든 거야 . . . 그래도 아주 먼날 우리사이 친구였다고 너무 늦게 알아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 안해도 돼 우린 늘 식어 빠질 때 친구였네 그걸 남과 남 사이라고 하는거야 아니 형제사이라고 해도 믿는 사람 아무도 없네 ~~~~~~~~~~~~-~~~-~~~ 무제(무죄) 비겁자라 할까 / 손정모(14058) 늙은 여우가 달빛도 없는 산등성이를 넘었다 왕후장상의 무덤에서 재주를 두어번 넘고 신발이 벗겨진 체 밤이슬에 젖었다 사람들이 그러더구나 암컷 여우가 아닌지 모른다고 어떤 사람은 숫 컷이 맞기는 맞다고 한데 반백이 되고 해골 골수도 백골화된 아픔도 괴로움도 없는 추잡스런 구더기만 득실거리는 영혼의 흔적을 지울 수 없어 이름은 못 남기고 가죽만 남겼다구나 둥근달이 떠는 밤에 혹 매미가 울거든 늙은 여우의 슬픈 탄식 소리로 들린단다 산자도 죽은 자도 환영받지 못하는 전설 같은 늙은 여우의 꿈이 잠든다 ~~~ 그는 무죄를 택했을까 남자답지 못하다 누가 더 비겁자인가 그를 추종했던 그들이 진정 더 슬픈 비겁자가 아닐까 ~~~~~~~~~~~~~~~~~~~ ~~~~~~~~~~~~~~~~~~~ 벗 하나 있었으면 / 도종환 마음 울적할 때 저녁 강물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 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같은 친구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애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 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없는 사랑말고 저무는 들녁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 나이 / 김재진 나이가 든다는 것은 용서할 일보다 용서받을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보고 싶은 사람보다 볼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다리고 있던 슬픔을 순서대로 만나는 것이다. 세월은 말을 타고 가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마침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도 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 변 신 / 정희성 고전의 어느 숲을 지나온 강물 위에 지금은 무섭도록 헤진 얼굴이 일렁이는데 이것이 글쎄 누구의 얼굴인지 이 강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몸을 던지면서 생각해 보았는지 몰라. 죽은 사람과 죽지 않은 사람 담담한 얼굴을 하고 흘러서는 그렇게 쉽사리 돌아오지는 않을 것 어느 후광을 따라 나섰을까 조용히 등에 칠성판을 깔고 별이나 헤고 있는지 내성의 깊이로 꺼져들어간 강 그 가늠할 수 없는 깊이에서 우리를 붙잡는 무슨 힘이라도 있는가 내가 왜 빠지고 싶은지 나도 몰라 「바빌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워리가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노라 침착한 시간의 녹슨 고기를 낚아 빛나는 면경처럼 들여다볼라치면 몰라 낯설어진 우리의 얼굴을 우리가 몰라 가르쳐 준 것도 귀담아 들은 것도 아닌데 부대낀 언덕 저 편에서 누군가 그런다지 니힐 니힐리아 부르며 그런다지 진주남강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놓은 보리알 같이 소박한 내 거문고 소리여 이 어지러운 강변의 오오 산 죽음 그대 여인이여, 잘리운 손목과 굳은 혀를 들어 지금은 돌아와 노래할 때라 이렇게 불러보는 나의 노래로 너를 파묻고 돌아선 밤물결은 뒤채고 삶은 또 왜 이다지 잔혹하게 나를 휘어잡는 것이냐 광명은 다시 어둠 속에서 신지핀 누이마냥 난무하던 적과 이방인의 자취를 흡수해 가버렸지만 빛은 언제나 음영을 거느리고 찾아들 듯 기껏 우리가 찾은 적은 우리의 벗 어둠은 항상 새로운 형태로 인식되어야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속에서 죽었을까 신화와 현실의 어중간에서 우리는 실신한다. 빛이 외면한 땅속 깊이 욕망의 불을 넣어 그 무던한 밤과 어둠을 지킨 우리가 미련한 짐승의 자식인 탓일까 마늘과 쑥 대신 풀뿌리 나무껍질을 씹으며 너무도 오랫동안 강인한 여력으로 우리는 우리속에서 우리들과 싸워왔다. 우리? 눈물이 나도록 슬픈 상징이여 한 번 싱싱하게 핀 적이 없는 잎들의 내부엔 여름같은 이 겨울은 깨칠 수액이 진한채 온갖 시새움에 서슬이 시퍼런 신경의 가지끝 무고했던 내 백성의 머리, 피로에 겨운 스스로의 무게를 가누지 못해 저렇게 숱한 나뭇잎으로 잊고 싶은, 잊고 싶은 기억들이 나부낀다. 흡사 성 밑의 가등, 미열이 이는 기류속으로 몇 마리의 나방이가 어둠을 털며 날아들 듯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무기력하게 만들었는가 죄많은 왕의 거대한 무덤처럼 하늘 가상이로 들어난 능선 그 밑에 살아남은 주검들의 형상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또 향나무 제기를 닦고 있다. 망우리 주목나무 숲에서 슬픔이 살아 오른다. 시름 시름 시름이 살아 오른다. 그리고 사월이여, 내 자식은 거리에서 죽었다. 죽은 이방시인의 싯귀가 한국에서 더 절실해지는 사월에, 라일락나무숲 독한 향기속에. 뒤척이는 물결속에선 총탄이 박힌 머리가 조국이 무섭다고 중얼거리며 떠오르고 목선의 짐대가 바람결에 부딪치며 그 옛날 의로운 죽음을 말하고 있을 뿐 아무도 그것이 조국의 참된 얼굴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거리에서 죽은 혼령들이 속돌에 스민 듯 시가에는 해마다 투석전이 벌어지고 최루탄이 없더라도 사월이여, 스스로 우리가 울어야 할 것을 아는데도 혁명, 오 너의 엇갈린 문맥. 금빛 게으른 소가 알 수 없는 음절을 반추하고 사사미 짐대예 올아서 해금을 혀거를 드로라 데모가 나면 어머니 학교에 안 가도 된대요 눈이 아픈 걸요 다시 곰이나 될까봐 눈을 뺀다, 빌어라, 빌어라, 눈을 뺀다 어쩌면 종말같고 어쩌면 시작같은 아침 오늘도 혁명, 얄리얄리 출근을 안해도 되는 날 오늘의 메뉴는 마늘과 쑥 또 한번 당신은 변신할 필요가 있읍니다 시청 청사 위 비둘기 집은 위태로운 아이러니,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 안에서 목잘린 사슴의 이야기를 전설이라고 생각할 것인지 밤새 우리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는지 다만 그것을 모르는 채 일상의 구획된 거리를 빠져나가며 나날이 개편되는 우리들, 석간의, 늘 위태한 입구에서 집적의 우울한 낱말을 손에 쥔다. 신라의 한 조각 불투명한 기왓장으로 사가는 매양 역사를 들여다보지만 곱게 미칠 수 없던 시대의 그 갈증나는 아이들은 지금 소리없는 전쟁의 기류를 타고 하연 껍데기처럼 흐느끼고 있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밤이 기슭에 닿도록 석굴 술집에서 마신 술을 퇴계로에서 토하고 나서 십자가에 허수아비 얼굴을 걸어놓은 사람들. 탄흔이 가신 피부 속으로 황달이 스민듯 잎진 나무들 새로 먼 해원을 바라보며 영혼의 죽은 나무 이파리를 들춘다. 이것이 주구의 얼굴인가. 누구의 얼굴이어야 하는가. 글쎄, 이것이 정말 거짓말인가 몰라 어항 속에서는 물고기가 익사했다는데 어느 날 우리가 우리속에서 돌연히 죽을지 우리들의 시대에 아이들이 그런다지 니힐 니힐리아 부르며 그런다지 가르쳐준 것도 귀담아 들은 것도 아닌데 노래는 즐겁다, 노래는 끝났다 그런다지 그대 오른 손이 다시금 수금을 쥐더라도 여인이여,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마디를 풀고 흐를 수 없는 우리, 웃기는 웃어도 웃으라면 내가 그렇게 웃기는 하여도 시시로 파고드는 시름의 주둥이를 종이 접듯 안으로 사릴 줄 아는 슬기로 슬픔을 접어 하늘에다 날릴 날이 다시 노래할 날이 있을까 몰라. ~~~~~~~~~~~~~~~~~~ (다시 올림) 별까지는 가야한다 / 이기철 우리 삶이 먼 여정일지라도 걷고 걸어 마침내 하늘까지는 가야 한다 닳은 신발 끝에 노래를 달고 걷고 걸어 마침내 별까지는 가야 한다 우리가 깃들인 마을엔 잎새들 푸르고 꽃은 칭찬하지 않아도 향기로 핀다 숲과 나무에 깃든 삶들은 아무리 노래해도 목쉬지 않는다 사람의 이름이 가슴으로 들어와 마침내 꽃이 되는 걸 아는 데 나는 쉰 해를 보냈다 미움도 보듬으면 노래가 되는 걸 아는 데 나는 반생을 보냈다 나는 너무 오래 햇볕을 만졌다 이제 햇볕을 뒤로 하고 어둠 속으로 걸어가 별을 만져야 한다 나뭇잎이 짜 늘인 그늘이 넓어 마침내 그것이 천국이 되는 것을 나는 이제 배워야 한다 먼지의 세간들이 일어서는 골목을 지나 성사가 치러지는 교회를 지나 빛이 쌓이는 사원을 지나 마침내 어둠을 밝히는 별까지는 나는 걸어서 걸어서 가야 한다 ~~~~~~~~~~~~~~~~~~ 부치지 않은 편지 / 정호승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 옹이 / 류시화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 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죽지 않을 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떠나지 않을 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침묵할 것이 아니면 말하지도 않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이면, 미워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 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디 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 번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 사랑만이 희망이다 / 드보라 힘겨운 세상일수록 사랑만이 희망일 때가 있습니다 새들은 하늘에 검은 먹구름이 드리울수록 더욱 세차게 날개 짓하며 비상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꽃들은 날이 어두워질수록 마지막 안간힘을 다하여 세상을 향해 고개 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나무들은 그 생명을 마쳤어도 하늘을 향해 곧게 제 모습을 지키며 서 있다는 사실을 우린 정말로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죽어서도 의연히 서 있는 나무들처럼 마지막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고개 들어 하늘을 보는 꽃들처럼 먹구름이 내려앉을수록 더 높이 비상하는 새들처럼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함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희망일 때가 있습니다. ~~~~~~~~~~~~~~~~~~ 사람이 되어 간다 / 손정모 사람이 되어간다는 말은 교육의 힘이다 교육이 잘못되면 사람답지 않는 것과 같다 박사의 자격에는 박사논문심사를 하겠지만 심사자 또는 평가자는 대상자가 올바른 사람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박사뿐만 아니라 사람의 형상에 있어 사람다움을 전제로 하고 있음은 사람답다는 것은 인간의 표상이다 사람답지 못할 때 박사가 무슨 자격이 되고 경력이 되고 경험이 되겠는가 (최고학부를 나오거나 최고 학위를 가져도 인간이 되지 못하면 무용하다는 뜻) 사람이 철 들 때 사람의 형상이 갖추어 진 것이고 형상을 갖추어(의관을 갖추어) 인간의 품위와 품격이 형성된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울 미가 아니라 든 사람, 된 사람, 난 사람의 아름다움이다 어버이날에 부르는 노래입니다 어머니의 마음 작곡. 이홍렬 / 작사. 양주동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서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하리요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얼마 전 고위공직자가 국민을 개, 돼지로 표현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근간의 뉴스를 보면 재계의 총수(가족)도 국민을 노예나 개, 돼지로 보지 않았나 하는 것은 이미 국가적으로 국민적으로 표현이 현실화되지 못한 것이지 실상 저변을 적용한 가학 가혹행위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어린이집, 보모 등의 아동학대 사건은 우리 사회 현실의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도덕도 윤리도 땅에 떨어진 교권(부모,어른)의 권위까지도 성범죄적 현상까지도 국가 사회적 심각한 현상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의 바탕은 교육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음에도 애써 외면하는 것은 나만 안그러면 돼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행위이지 사회 전체는 아니야..... 그러나 이러한 피해현상은 공분에 직면하기도 전에 내가, 내 아이가, 국민이 몸으로 세금으로 막아 나가는 현실임에도 아직은 쾐찮다 잘 될꺼야 등의 긍정의식은 위험수준을 감지 못하는 둔한 현상이다 훈육의 문제 가정교육은 참으로 중요하다 물론 가풍도 중요하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이 가정훈육을 잘 받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 소변 문제 식사예절 문제 보통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이 훈육은 완결되어야 한다 이 문제가 대두된 것은 초등학교 전의 어린이 집, 유치원에서 그 보다 앞서 보모의 보육에서부터 비교되는 현상으로 가혹하게 다루어진 사건이 표출되었다 내 아이는 안 그렇는데 이 아이는...(폭력, 폭행)... 아이뿐만 아니라 청소년 또한 심각하다 공공장소 예절은 안중에도 없다 공공장소 화장실을 보면 안다 남자가 흘려서는 안 되는 것이 눈물뿐만 아닙니다 한걸음만 더 앞으로 오십시오 휴지는 휴지통에... 휴지를 휴지통에 정확히 넣을 줄 모른다 공공장소 벤취(자석)의 쓰레기 일회용 커피 쏟고 처리하지 않는 행위 공공시설물 낙서 및 훼손하는 행위... 식사예절은 어떠한가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이 있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요즘 젊은 새댁들의 아이 키우는 모습은 어떠할까 어린집, 유치원 교육은 어떠하고 초,중,고 학교 교육은 또 어떠한가 기초질서 교육은 강화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초등학교 졸업식에는 기초질서를 확실하게 지키겠다는 선서와 서약을 하게 해야 한다 미성년자라고 하여 기초질서의 예외는 없다 청소년이라고 하여 방기해서는 안 된다 어른이 젊은이를 훈육하는 것은 정당행위로 인정받아야 한다 가혹하지 않는 시비나 폭력 등에도 형법보다 우선하는 정당행위의 참작이 일정범위 선처되어야 한다 이는 학교교육도 사회교육도 훈육의 정당행위가 성립되어 질 때 좀 더 건전한 사회의 사람으로서 인간으로서 품격을 갖쳐 나가는 사회발전이다 이러한 훈육의 최종 단계는 경찰이다 미성년자에 대한 배려, 사춘기에 대한 배려 즉, 배려는 하지만 훈육은 받아야 한다 훈육기관으로서 경찰의 몫 또한 커다 든 사람, 된 사람, 난 사람이 되기까지 길은 험하고 갈 길은 멀다 이러한 훈육이 즉, 가정과 학교와 경찰이 지 때에 행사되지 못하면 이는 사회와 국가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않게 된다 그 피해는 사소하게도 개인에게 직접 미친다 한마디로 공공의 적이 되는 아이를 키워서는 (방치했어는) 안된다 공공의 적에 대해 가정이 책임지고, 또한 학교가 책임지는 일, 경찰이 책임져야 하는 것도 있어야 합당한 것이다 그것이 조직이고, 사회이고, 국가이다, 국민이 동의하고 함께해야 하는 것이 사회교육이고, 기초질서 와 예절교육이다 ~~~~~~~~~~~~~~~~~~~ [이제 정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 JDS 노회찬 의원이 자살했습니다. 충격적입니다. 저는 처음에 가짜 뉴스라고 생각했습니다. 노회찬 의원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비유나 가상 상황 같은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이었습니다. 제 진짜 충격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왜 이런 죽음이 특정 진영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날까요? 특히 정치적 사회적으로 심각한 이슈가 제기되고 그 진영의 입장에서 뭔가 국면 전환의 필요성이 생길 때마다 마치 준비라도 해두었다는 듯이 이런 불행한 죽음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너무 희한합니다. 프로야구 등에서 드라마틱한 역전극을 가리켜 ‘대본 없는 드라마’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만, 이건 소설 같아도 너무 소설 같습니다. 저의 충격은 이런 대본 없는 드라마가 어쩌면 이렇게 자주, 기가 막힌 타이밍에 발생하는지 너무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측면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드라마틱하고도 불행한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입니다. 저는 평소에도 노무현에 대해서 무척 비판적인 편이지만 특히 그의 자살에 대해서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노무현이 한 일 가운데서도 가장 잘못한 일이 그의 자살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노무현은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기소중지 처분을 하고 말았지만, 사실 그의 혐의는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죽음으로 그 모든 것을 그냥 유야무야 덮고 지나가게 됐습니다. 이게 옳은 것일까요?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이 지은 죄를 단지 그가 자살했다는 이유로 덮어주고 나아가 미화까지 하는 게 정상적인 나라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일까요? 사실 그의 죽음으로 그의 죄가 없어지거나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죽음으로 사건의 진실을 가려버렸기 때문에 그는 죽기 이전보다 더욱 엄중한 비판과 정죄를 당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자살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뇌물수수죄가 오히려 위대함의 징표로 여겨집니다. 극단적인 가치관의 전도이자 심각한 도덕적 타락이 국민 대중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노무현이 자살하기 이전에 소위 친노세력은 안희정의 표현대로 이른바 ‘폐족’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유시민 등 노무현의 측근들도 노무현과 거리를 두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의 자살 이후 친노는 느닷없이 민주화와 진보, 양심의 상징이 됐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에서 있을 수 있는 반응입니까? 노회찬 의원의 자살도 비슷한 경로를 밟아간다는 불길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노회찬이 얼마나 훌륭한 정치인이었고, 인간적인 성품이었는지 강조하는 메시지가 온오프라인에서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노회찬이 스스로 인정한 그 뇌물수수죄는 어디로 갔습니까? 드루킹 사건과 노회찬의 관계 등 더 조사해야 할 인물과 사실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이 모든 것이 노회찬의 죽음으로 그냥 덮고 지나가도 될만한 일들입니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현상이 매우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노태우 정권 당시이던 19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백골단의 폭력에 의해 사망한 이후 대학생 등의 자살이 이어졌습니다. 1991년 5월에만 대학생과 노동자, 시민단체 회원, 고등학생 등 8명이나 분신자살에 나섰습니다. 특히 당시 전민련 사회부장이던 김기설 씨가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자살한 사건은 이후 강기훈 전민련 총무부장의 유서대필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재심 끝에 결국 강기훈 씨가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당시 연쇄 자살 파동을 낳은 사회적 분위기 나아가 보이지 않는 배후의 작용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쉽사리 해명되지 않는 의혹을 남겼습니다. 당시 김지하 시인이 조선일보에 연쇄 자살을 비판하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칼럼을 게재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김지하의 이 칼럼은 소위 운동권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이후 그가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바로 2011년 김지하 시인의 부인이자 박경리 작가의 딸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이 “김지하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부터 ‘동지’라는 사람들이 김 시인을 죽이려 했고, 그게 안 되자 그를 따돌렸다”고 증언한 것입니다. 물론 김영주 관장의 발언은 행위의 주체를 특정하지 않았고, 여러 가지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운동권 내부에 대의를 위해 일부 개인의 희생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의식구조가 강력하게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입니다. 사실 학생운동권 내에서도 선배들이 순진한 저학년 후배들을 상대로 “민주화의 대의를 위해 네 한 몸 희생하라”며 열사가 되기를 요구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선배들의 그런 권유에 의한 것인지, 어떤 사건이 순수하게 자발적인 결단의 결과인지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운동권 내부에서 그런 희생과 죽음을 미화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에서 숱한 ‘열사’가 운동권에 등장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한때는 그런 죽음이 민주화를 위한 의미 있는 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훨씬 강해졌다고 봅니다. 불의에 대항해 치열하게 싸우다가 희생된 것도 아니고, 자신이 저지른 불의를 덮고 그 책임 추궁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택한 자살이 어떻게 미화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까? 해마다 5월이 되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이어 노무현을 추모하는 열기가 이어집니다. 도대체 뭘 추모하는 것일까요? 당신이 죽어줘서 우리가 살았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뜻일까요? 문재인이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진도 팽목항에 가서 세월호에 희생된 아이들에게 남긴 방명록도 “얘들아, 미안하다. 고맙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니 노무현의 죽음에 큰 책임이 있는 그의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 추모식장을 찾은 조문객에게 “나라 생각 좀 하라”고 당당하게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당하다고 해야 할지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세월호 뒤집힌 것처럼 가치관이 뒤집힌 이 나라에서는 도무지 정상적인 판단이 어렵습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노회찬의 죽음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원통한 죽음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묻게 될 것이다”고 썼다고 합니다. 전형적인 적반하장입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생각이 딱 막힙니다. 뭐가 원통하다는 걸까요? 무슨 책임을 누구에게 묻겠다는 걸까요? 저런 생각을 하고 저런 발언을 하는 사람이 원내 정당의 대표가 되고 저런 발언이 아무 반박이나 저항도 없이 당연하게 통하는 나라, 정말 이게 나라입니까? 죽음으로 모든 잘못을 덮을 수 있는 문화가 죽음에 대한 미화로 연결되고, 이것이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 등 각 분야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관 장사, 시체 장사로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시신과 유골에 대한 애착증 즉 네크로필리아가 특정 개인의 차원을 넘어 광범위한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나아간 기괴한 모습이라고 봐야 합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더 죽음의 미학이 발달한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복 흔히 하라키리라고 불리는, 사무라이 계급에서 행해지던 자살이 대표적입니다. 지금도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킨 기업체 대표 등이 죽음으로 책임을 지는 사례가 종종 보도되곤 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저 죽음이 노무현이나 노회찬 등의 죽음과 같은 성격은 아니라고 봅니다. 노무현이나 노회찬의 죽음이 진실을 덮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일본인들의 자살은 말 그대로 자기 책임을 다하겠다는 측면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얼마 전 옴 진리교의 교주이던 아사하라 등 사린가스 사건의 주범들이 대거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무려 23년만에 사형이 집행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이 사건 관련자 중 마지막 수배자까지 다 검거되어 재판을 받고 사건의 진상이 완벽하게 다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진실이 다 드러날 때까지는 집행을 미루고 기다렸던 일본이라는 나라의 저 원리 원칙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배워야 할 자세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정치인 등의 자살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우리의 관점도 이런 점에서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자진해서 죽어버리면 모든 잘못을 덮어버리고 오히려 우상이 되고 숭배의 대상이 되는 이런 미개한 분위기는 바뀌어야 합니다. 노무현의 자살이 우리에게 알려준 교훈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라고 봅니다. 노무현의 자살이 미화됨으로써 우리 사회와 정치가 얼마나 심각한 퇴행과 가치관 왜곡을 겪고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노회찬의 죽음이 또다른 우상이 되는 몰지각한 현상은 막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과 오피니언 리더들도 이 문제에서 다시 분위기에 휩쓸려 대중에게 아부하는 자세는 벗어나야 합니다. 욕 좀 먹더라도 할 이야기는 해야 합니다. 그렇게 못할 사람이라면 지식인으로서 발언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죽음의 굿판, 이제 정말 걷어치워야 합니다. 김지하 시인의 저 발언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메시지일 것입니다. ..................................................... [sons는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찬성함 아래 글은 공감하지만, 그곳자리를 타용도로 내어줄수없음 건립 입지와 적기(적기적소) 및 건립 기회 등으로보아 찬성함] 반성의 기회... ◆ 부산 오페라하우스 유감 / KHY 색소폰을 둘도 없는 친구로 삼은 지 오래되었다. 틈나면 챙겨들고 집을 나서서 어디든 풍광 좋고 다른 사람에게 불편 끼치지 않는 곳이 있으면 홀로 연주에 심취하곤 한다. 그런데 가끔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교양이라곤 서푼어치도 없는 사람들 말이다. 한창 연주를 하고 있는데 반주기(노트북)가 무어 그리 신기한 지 얼굴을 들이 밀고는 코를 박고 들여다보는 사람, (그 뒷통수를 색소폰으로 꽝 내리치고 싶어진다) 색소폰을 처음 보는지 색소폰에 코 박고 아래 위로 뜯어보는 사람, (연주할 맛이 딱 떨어진다) 목덜미 바로 뒤에서 콧김을 뿜어 가며 관람하는 사람, 바로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 (색소폰은 호흡으로 부는 악기라서 담배 연기는 쥐약에 가깝다)등등............. 이런 사람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연주 중에 있는데 대뜸 다가와 귀에 대고 ‘지금 공연하는 겁니까?’ 하고 묻는 사람을 봤다. 연주 멈추고 ‘예?’ 하니 같이 온 사람에게 ‘연주 한단다’ 하고 일러 주는 사람 말이다. 불쾌함을 느끼기 전에 ‘아,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것을 배웠다. 양산 원동 정자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정자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데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한 사람이 오더니 대뜸 “아재, 동백 아가씨 한 곡조 뽑아 주소”하는 게 아닌가. 내가 노기 띤 얼굴로 말했다. “아재, 내가 무슨 딴따라로 보입니까? 한 곡조 뽑아 달라니... 내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면 내게 한 곡조 뽑아 달라고 할 수 있었겠어요?” 고성 당항포 가까운 정자에서 있었던 일이다. 프로색소폰 연주자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유튜브에서 보면 연주 중인데 웃고 떠들며 잡담하는 소리가 어김없이 들려온다. 악기가 색소폰(딴따라 대표 악기?)이라서 그런 탓도 있긴 있을 게다. 그렇다 해도 이 나라 사람들의 공연 관람 수준이 그 수준임을 어찌하랴. 마지막 이야기. 부산시 관광진흥과장을 할 때(2001년)이다. 해운대에 부산출신 모 가수의 기념비를 세우려고 한 적이 있었다. 언론 보도를 보고 무슨 대학 교수라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다. 공공기관에서 왜 대중가수를 기념하는 비석을 세우려 하느냐며 따졌다. 그것이 어디가 왜 잘 못된 일인지 물으니, 대중가요는 저속하고 품위가 없다는 것. 그런 노래를 부르는 대중가수를 기념하는 것은 부산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것. 그런 일을 왜 부산시에서 앞장서서 하느냐는 것. 입씨름이 벌어졌고 나는 참다못해 쌍욕을 그러 붓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나는 한참 동안 씩씩 거렸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나는 우선 오페라하우스라는 이름 자체가 못마땅하다. 오페라라는 이름도 사전을 찾아보아야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다. 뜻도 모르고 쓰는 사람 많다는 얘기다. 그만큼 한국인의 삶 속에 오페라는 멀고 먼 나라 이야기다. 지금 그런 하우스를 짓겠다는 거다. 그리고 그 규모도 못마땅하다. 국립국악원 부산분원이라는 게 부산에 있다. 그런 게 부산에 있다는 사실, 아는 시민들 얼마나 될까? 아는 사람 10%도 안 될 거다. 그곳에 가서 국악 공연 관람한 사람은? 부끄러우니 말을 말자. 나도 아직 그 안에 한 번도 들어가 본적도 없으니... 쯧. 시쳇말로 부산국악원은 시민공원 옆뽈때기에 찌개다시(어느 친구의 표현임)처럼 지어 놓고 쳐다도 안 보면서 오페라하우슨가 뭔가 하는 것은 무슨 대궐마냥, 그것도 부산의 상징터라 할 수 있는 북항 앞바다에 떡하니 짓겠다는 것을 보는 마음이 편할 리 있겠는가. 더욱 마음에 안 드는 것은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라는 건물이 멋져 보이니 흉내 내보겠다는 것인데, 세상에 그 속을 채워 넣을 소프트웨어는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 있으면서 건물만 덜렁 무슨 졸부가 돈자랑 하듯 짓겠다하니 그 얕음과 천박함에 꼭지가 뺑 돌아버릴 지경이라는 거다. 이야말로 향단이가 춘향이 흉내 내는 꼴이 아니고 무엇인가. 백번 양보해서 호주 시드니에 우리나라의 국악원 같은 것이 하나 떡 하니 서 있다면 호혜 차원에서 지금의 부산국악원 만큼 쪼맨한 오페라하우스 하나를 어디 옆뽈때기에 짓는 거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이에 더해 내 맘을 진짜 아니 편케하는 이야기를 하자니 나 스스로 마음이 짠하다. 무슨 얘기냐 하면, 오페라나 오케스트라 관람객들의 복장과 매너 이야기다. 영화나 동영상을 통해 유럽인 관람객들의 복장과 매너를 늘 유심히 보곤 했다. 그 사람들의 그런 복장과 매너는 오페라에 출연하는 사람들과 연주자들에 대한 사랑과 신뢰와 존경으로 가득하다. 이 사람들은 길거리 연주자들에 대한 매너까지도 우리와는 다르다. 진지하게 눈을 감고 음미하는 것을 보면 우리와는 전혀 다른 별세계가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나는 선진국, 그러니까 오페라를 향유할 정도로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 갖추고 있는 덕목은 우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배려와 존중, 조화와 절제 이름 붙여 선진국형 ‘4덕목’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덕목의 현주소는 어떠할까? ●이기와 모멸, 부조화와 무절제에다 무례함까지! 이름 붙여 한국인의 ‘5비非덕목’이다. 이 ‘5비非덕목’을 선진국형 ‘4덕목’으로 바꾸지 않는 한 아마 이 나라는 국민소득이 5만 달러가 넘어 간다 해도 선진국 소리 듣는 것을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이고, 오페라하우스처럼 4덕목을 전제로 하는 시설의 건립은 시기상조라 할 수 있다. 코펜하겐에 가면 시드니 꺼 저리가라 할 정도로 근사한 오페라하우스가 해안가에 서있다.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이 들여 지은 오페라하우스란다. 북유럽을 한 바퀴 돌아보고 느낀 것은 거기 사는 사람들의 생활은 이 선진국형 4덕목이 체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네 가지 덕목이 일상화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곧 선진국이라는 얘긴데 오페라하우스는 그런 나라에나 어울린다면 지나친 자조自嘲일까? 부산시에서 오페라하우스 재검토 한다하니 분노하고 한탄하는 사람들 있다는 거 안다. 그전에 이 분들은 부산문화회관과 오페라하우스의 차이가 뭔지를 시민들에게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부산문화회관 대강당에서는 오페라 공연이 안 되는 이유가 있는지? 왜 굳이 오페라 공연만 가능한 하우스를 따로 지어야 하는 건지? 만약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페라 이외의 다른 공연도 가능하다면 하필이면 이름을 왜 오페라하우스라 지어 시민들로 하여금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지? 오페라하우스 안을 채울 수 있는 소프트웨어 즉, 부산 예술인들의 힘으로 소프트웨어 제작과 공연이 가능한지? 아, 다시 들먹이기 싫지만, 공연관람하러 부산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올지, 관심이나 둘지, 혹시 오페라 공연 중에 ‘한 곡조만 더 뽑아보소!’라며 고함을 치는 사람은 없을른지, 국립국악원 부산분원 꼴 나는 건 아닌지 등등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이러한 의문들이 해소되지 않는 한 나는 오페라하우스 짓는 일, 거들고 싶지 않다. 갑자기 대중가요는 저속하다던 어느 품격 높은 교수 생각이 왜 나는지^^ ~~~~~~~~~~~~~~~~~~~ 류시화 어렸을 때 산골의 우리 집에는 겨울이면 누나들이 흐린 전구 아래서 털실로 목도리며 벙어리장갑을 떴다. 하루는 내가 등 뒤에 누워 잠들락 말락 하는데 막내 누나가 큰누나에게 "언니, 나 코 빼먹었어!"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단어들을 막 배우기 시작한 나는 기겁을 하고 놀랐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예쁘기로 소문난 막내 누나가 코를 빼먹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공포에 떨다 잠이 든 나는 누군가가 내 코를 빼먹자고 쫓아오는 악몽에 시달렸다. 단어의 중의적(한 단어나 문장이 두 가지 이상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 의미에 처음 눈뜬 계기였다. 며칠 후 내가 마루에 앉아 있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오더니 우리 엄마에게 말했다. "형님, 나 드디어 젖을 뗐어." 나는 놀라 마루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저 아주머니가 러닝셔츠 바람으로 뛰어다니더니 드디어 젖을 떼 버린 것이다. 그러자 어머니가 물었다. "그렇게 애를 먹더니 어떻게 뗐어?"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까징기(빨간 소독약)를 발랐지." 그 이후 나는 무릎이 까져도 빨간 소독약을 기피했다! 그것이 아주머니의 늦둥이 아들에게 더 이상 젖을 물리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인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빨간 소독약 증후군은 오래 갔다. 열세 살 때 서울로 유학 온 나는 거리를 걸을 때마다 충격의 연속이었다. 이모산채비빔밥, 할매뼈다귀해장국, 엄마손칼국수…… 서울이라는 도시가 너무나 잔인하고 무서웠다. 인생 문제를 상담하러 찾아온 여성에게 이 이야기를 해 줬더니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녀의 웃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내가 또다시 말했다. 어렸을 때 겨울이면 누나들이 밤마다 털실 목도리며 장갑을 떴다. 하루는 내가 잠들려는데 막내 누나가 "나 코 빼먹었어!"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기겁을 하고 놀랐다. 배가 고파 코를 빼먹었다는 것이 너무도 충격이었다. 며칠 후에는 옆집 아주머니가 우리 엄마에게 드디어 젖을 뗐다고 말하는 걸 듣고 또 한 번 놀랐다. '아까징기를 발라 젖을 뗐다'는 아주머니의 말은 내게 빨간 소독약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를 심어 주었다. 내가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 여성은 처음보다는 훨씬 덜 웃었다. 내가 모른 체하고 또다시 "어렸을 때 겨울이면 누나들이 밤에 벙어리장갑을 떴다….."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자 그녀는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마침내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우스운 이야기도 세 번을 반복하니까 재미가 없죠? 그런데 당신은 왜 10년 전에 일어난 억울하고 분한 일을 계속 곱씹고 있죠? 고통스러운 사건을 마음속에서 언제까지 반복해야 싫증이 나고 재미가 없어지겠습니까?" ..... ---------------------------------
01. 이룰 수 없는 사랑 (클라리넷) 02. 하루 (트럼펫) 03. 두렵지 않은 사랑 (색소폰) 04. Lotus of Heart (수정금)
05. 사랑이여 (바이올린) 06.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하모니카) 07. 추억의 쏘렌자라 (기타)
08.춤추는 용 (水舞龍 Dancing Dragon 오카리나) 노무라 소지로 (Nomura Sojiro 대황하 大黃河) 09. 만남 (핸드벨)
10. 캐논변주곡 (드럼 & 바이올린) 11. 나뭇잎 사이로 (플룻 & 클래식기타) 12. 비목 (팬파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