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Newly)

(16001) 간밤에 / 손정모

intervia 2016. 1. 14. 15:14
      간밤에 / 손정모 (16001) 사람들이 한순간 착한 마음으로 변했다 분명 간밤에 낮선 사람 여러 명이 내 집 문을 열려고 열쇠구명을 돌렸다 나는 그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들이 문을 열지 못하고 돌아갔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그들이 왜, 문을 열지 못했을까 참, 착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한순간 악한마음도 없는 사람이 됐다 무능이라는 말속에서도 지혜가 선한 꼭두각시보다 못한 개가 꼬리를 흔든다 사람들이 한순간 무능해져 멍한 상태에서 생명의 존재감을 잃는다 우락부락한 인상과 강한 근육질 힘이 아니라 마음 앞에서도 사람은 바람처럼 날리어 간다 복면을 한 사람들이 줄지어 간다 아주 강한 소리가 가까이서 멀리로 어울거린다 무슨 소리를 해도 들리지 않는다 개천을 따라 골목바람이 북풍처럼 설친다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 속에 남은 하얗고 까만 자국이 빛살에 울다가 천연색 빛깔 좋은 실 웃음이 나온다 사람들이 한순간 도망가고 난 뒤 노란 개나리꽃이 길가에 선다 진달래 분홍빛 얼굴 속 횡단보도 낮선 거리에 밤 벚꽃이 아주 많이 아침 햇살에 피었다 벌써 봄이 온 거야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웃는 거야 사람마다 꽃을 든 마음이 가만가만 깨어나는 거야 간밤에 사람들이 다아 살맛나는 세상에 이름표를 달고 자기 집 문 앞에 서서 그동안 무능에 대한 고백을 했어 어찌어찌하여 찾아온 신상명세를 털고 잊어버린 고향을 찾아온 거야 그 집에서 하룻밤도 착하디 착한 웃음으로 가만히 눈 감고 그렇게 가셨다 하더구먼 그렇게 간 거야 2016년1월14일ss ------------------------------------ 에필로그 편지 / 양현주 ------------------------------------ 우리의 마음속에 / 김용호 초록의 꿈을 키우는 아름다운 산천에 바람이 지나 가야 할 곳이 있듯이 우리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사랑이 지나 갈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강으로 이여 지는 계곡에 부드러운 물이 지나 가야 할 곳이 있듯이 우리의 협소한 마음속에 부드러운 이해가 지나 갈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이런 저런 유혹과 갈등에 마음이 조금은 흔들려도 균열이 생겨서는 안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위해 자기를 다 태우는 희생의 촛불 하나 우리의 마음속에 밝혔으면 참 좋겠습니다 ------------------------------------ 초원의 빛이여 / 윌리엄 워즈워스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질수록 그대를 향한 마음 희미해진다면 이 먹빛이 하얗게 마르는 날 나는 그대를 잊을 수 있겠습니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해도 서러워 말지어다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세월을 찾으소서 초원의 빛이여! 그 빛이 빛날 때 그대 영광 얻으소서 한때는 그토록 찬란했던 빛이 건만 이제는 덧없이 사라져 돌아킬 수 없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찾을 길 없더라도 결코 서러워 말자 우리는 여기 남아 굳세게 살리라 존재의 영원함을 티 없는 가슴에 품고 인간의 고뇌를 사색으로 달래며 죽음의 눈빛으로 부수듯 티 없는 믿음으로 세월 속에 남으리라.... ------------------------------------ 선택의 가능성 /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영화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바르타 강가의 떡갈나무를 더 좋아한다. 도스토옙스키보다 디킨스를 더 좋아한다. 인간을 좋아하는 자신보다 인간다움 그 자체를 사랑하는 나 자신을 더 좋아한다. 실이 꿰어진 바늘을 갖는 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모든 잘못은 이성이나 논리에 있다고 단언하지 않는 편을 더 좋아한다. 예외적인 것들을 더 좋아한다. 집을 일찍 나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의사들과 병이 아닌 다른 일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한다. 줄무늬의 오래된 도안을 더 좋아한다. 시를 안 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편을 더 좋아한다. 명확하지 않은 기념일에 집착하는 것보다 하루하루를 기념일처럼 소중히 챙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에게 아무것도 섣불리 약속하지 않는 도덕군자들을 더 좋아한다. 지나치게 쉽게 얻는 것보다 영리한 선량함을 더 좋아한다. 민중들의 영토를 더 좋아한다. 정복하는 나라보다 정복당한 나라를 더 좋아한다. 만일에 대비하여 뭔가를 비축해놓는 것을 더 좋아한다. 정리된 지옥보다 혼돈의 지옥을 더 좋아한다. 신문의 제 1면보다 그림 형제의 동화를 더 좋아한다. 잎이 없는 꽃보다 꽃이 없는 잎을 더 좋아한다. 품종이 우수한 개보다 길들지 않은 똥개를 더 좋아한다. 내 눈이 짙은 색이므로 밝은 색 눈동자를 더 좋아한다. 책상 서랍들을 더 좋아한다.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마찬가지로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다른 많은 것들보다 더 좋아한다. 숫자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자유로운 제로(0)를 더 좋아한다. 기나긴 별들의 시간보다 하루살이 풀벌레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 불운을 떨치기 위해 나무를 두드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얼마나 남았는지, 언제인지 물어보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존재, 그 자체가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 영원 그 안에선 / 김남조 이별의 돌을 닦으며 고요하게 있자 높은 가지에서 떨어지려는 잎들이 잠시 최후의 기도를 올리듯이 아무것도 허전해하지 말자 가을나무의 쏟아지는 잎들을 뜯어 넣고 바람이 또 무엇인가를 빚는다고 알면 그만인걸 눈물 다해 한 둘레 눈물 기둥 불망인들 닦고 닦아 혼령 있는 심연 있는 거울이 되도록만 하자 이별의 문턱에 와서 마지막 가장 어여쁘게 내가 있고 영원 그 안에선 그대 날마다 새로이 남아 계심을 정녕 믿으마 말로는 나타 못낼 위안의 저 청람빛, 하늘 아래 생겨난 모든 일은 하늘 아래 어디엔가 거두어 주시리라 ------------------------------------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디든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詩論, 입맞춤 / 이화은 여자는 키스할 때마다 그것이 이 生의 마지막 입맞춤인 듯 눈을 꼭 감고, 애인의 입 속으로 죽음처럼 미끄러져 들어간다는데 남자는 군데군데 눈을 떠 속눈썹의 떨림이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이며 풍경의 변화와 춤추는 체온의 곡선까지 꼼꼼히 체크한다고 하니 누가 시인일까 독자는 여자 편에 설 것이고 시인은 당연히 남자 편에 설 것이다 몰입의 바닥에는 시가 없다 불타는 장작을 뒤집어 불길의 이면을 읽어야 하는 남자여 불쌍한 시인이여 키스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은 시인이거든 그대 당장 독자의 자리로 옮겨 앉아야 하리 그러나 시인의 발바닥은 완전 연소의 재 한 줌도 함부로 밟지 않는다 ------------------------------------ 동야(冬夜) / 배창호 솔가지에 걸려있는 저녁놀이 토담 벽의 온기처럼 여울지는 그런 날, 땅거미 이내 회색으로 내려놓았으니 초저녁 아궁이가 뭉글뭉글 붉다 겨울바람이야 뼛속까지 파고들어도 낯설지 않건만 통속이라는 회심에 찬 냉소로 침묵하고 묵언하는 사방이 야멸차고 서슬 푸른 골바람 그저 눈 한번 껌벅 그렸을 뿐인데도 속울음 삼킨 봉창이 가슴 조이는 깊어가는 헹한 밤 어찌할 바를 몰라서 어쩌랴 이미 판 벌어진 엄동인데, 상고대 가지마다 늘어놓은 이런저런 생각이 퇴적을 이룬다 휘몰아쳐 날리는 네, 지천을 깔았어도 ------------------------------------ 행복의 계단 / 이후재 창문을 넘어온 손수건 한 장 같은 아침 말간 햇살과의 만남이 첫 계단 작은 식탁에 앉아 아내의 손맛에 취해 날마다 감개무량하다면 두 번째 누군가의 초대로 길을 나서며 이웃의 온기 머금은 인사를 받는 것은 세 번째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살포시 포옹하는 두 나비에게 배시시 웃음 던지면 그건 네 번째 아, 그러나 탱글탱글한 물상物象 앞에서 소유욕이 돋아나면 그것은 망령
Winter Rose - George Davidson & Eugenia L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