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링이야기

曠 野 / 이육사 내 작은 시집.

intervia 2014. 11. 17. 09:11
      曠 野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山脈들이 바다를 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光陰을 부지런한 季節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千古의 뒤에 白馬 타고 오는 超人이 있어 이 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딸을 기다리며-고3 아이에게/ 박철 늦은 밤이다 이 땅의 모든 어린 것들이 지쳐 있는 밤 너만 편히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지구상 어느 나라에 우리처럼 가난은 곧 불행이다, 라는 공식을 외우며 걸식하듯 밤하늘을 쳐다보는 바보들이 있을까 오늘도 뉴스에는 여성들의 80%가 결혼조건의 최우선으로 경제능력을 꼽는다지만 막상 부자로 사는 이들은 열의 둘이란다 그러니 가난을 물리치는 대신 행복을 찾는 게 낫지 않겠느냐 하는 의연함을 키우다가도 옆집 갓난아이 슬픈 울음소리에 화들짝 놀라 빈 주머니를 쑤셔본다 너를 기다리며 딸아 가여운 아이야 많은 이들이 옳다면 옳은 것이겠지 지지 말고 살아라 이민 가며 친구가 남긴 한 마디 악하게 살아야 오래 산다는 말도 되살아오는 밤 어서 돌아와 잠시라도 깊은 잠 마셔봐라 숨소리 예쁘게- 반쪽의 달이 외면하며 구름 뒤에 숨고 밤이 어둔 것조차 내 죄인양 송구스런 밤 너의 행복을 쌓으며 몇 자 쓴다 아이야 ================================== 너에게 / 정 호 승 가을비 오는날 나는 너의 우산이 되고 싶었다 너의 빈 손을 잡고 가을비 내리는 들길을 걸으며 나는 한 송이 너의 들국화를 피우고 싶었다 오직 살아야 한다고 바람 부는 곳으로 쓰러져야 쓰러지지 않는다고 차가운 담벼락에 기대 서서 홀로 울던 너의 흰 그림자 낙엽은 썩어서 너에게로 가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데 나는 지금 어느 곳 어느 사막 위를 걷고 있는가 나는 오늘도 바람 부는 들녘에 서서 사라지지 않는 너의 지평선이 되고 싶었다 사막 위에 피어난 들꽃이 되어 나는 너의 천국이 되고 싶었다 ==================================== 내게 있어 사랑은 / 김민소 누구는 사랑을 기쁨이라 하고 누구는 사랑을 아픔이라 하지만 내게 있어 사랑은 기다림이었다 누구는 사랑을 행복이라 하고 누구는 사랑을 그리움이라 하지만 내게 있어 사랑은 타는 갈증이었다 기쁨이라 하면 아픔이 되고 행복이라 하면 어둠이 밀려와 마음 한켠에 켜 놓은 촛불 숱한 날을 다듬고 고쳐야 한줄의 시로 탄생하는 언어처럼 내게 사랑은 미치게 만드는 일이었다 ==================================== 남자보다 무거운 잠 / 김해자 꿈이랑가 생시랑가 머시 묵직한 거시 자꼬 눌러싸서 눈 떠본께 글씨, 나, 배, 우에, 올라타 있드랑께 워어메 이거시 먼 일이여, 화들짝 놀라 이눔 새끼를 발로 차버릴라고 했는디 이눔의 나무토막 같은 다리가 말을 안 듣는겨 죙일 서갖꼬 콩콩 프레스를 밟아댄께 참말로 이 다리가 내 다리여 놈의 다리여 이 급살 맞을 놈, 콱 죽여분다 이 신발 밑창 같은 새끼, 겨우 몇 마디 하고 글시 다시 스르르 눈이 감겨버렸나 벼 포옥 한숨 자고 포도시 눈이 떠졌는디 아즉도 꿈이랑가, 워메 그 인사가 아즉도 엎어져 있는겨, 와따 여즉도 안 갔소이, 머시 좋은 거이 있다고 고렇코롬 자빠져 있소, 눈 붙이고 난께 존 말라 타일러집디다이, 낼 일할라믄 질게 자야 쓴께 지발이나 빨리 가랑께요, 근디 이 본드 발른 밑창 같은 작자가 흔들어도 붙어 있는겨 이 썩어 자빠질 놈아, 다리를 휙 들어서 확 차분께 그제사 떨어져 나가붑디다 아따 컴컴하니 눈도 다 안 떠진디 먼 얼굴을 봤것소 일하고 깜깜해 돌아와서 더듬더듬 방문을 여는디 머시 겁나게 큰 것이 굴러가는겨, 오살할 놈, 남의 문 깨부셔불고 들올 땐 언제고 먼 지랄한다고 자물통이여, 육시럴 놈 같으니라고 누가 처먹는다고 수박도 오살나게 무겁드랑께요 이런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가슴이 먹먹하다. 우선 시인 같은 분들께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는, 지금 내가 누리는 자유와 풍요는 그분들의 헌신과 피땀의 결과로, 나는 그냥 공짜로 과실을 따먹고 있다는 죄책감이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남자보다 무거운 잠, 제목만으로도 너무 아프다. 시인이 꿈꾸는 세상과 해방은 어떤 것일까? 시인의 말이다. "기쁨과 향유와 쾌락과 먹거리인 대지의 수난은 제게 여성과 약자의 굴욕과 상처로 바로 치환돼요. 착취의 대상이자 오물처리장으로 대하는 땅에 대한 경외와 옹호, 그것은 제 실존으로부터 비롯되죠. 연민이나 동정이 아닙니다. 제가 여자고, 어쩌다 보니 병약하고 가진 게 없는 가난한 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목도하는 세상은 그냥 제 존재의 수치를 보여주는 거울이랄까? 이 세계의 불균등한 얼굴과 비대칭은 제가 만든 정원이라는 생각, 그러니까 제 밭을 치욕스럽게 짓밟는 것에 대한 견딜 수 없는 윤리적 요청이 해방을 꿈꾸게 합니다. 도덕이나 정의가 외재한다면 제 자신의 잣대로서의 윤리는 시시각각 안에서 고개를 처듭니다. 배가 아프고 머리가 찌릿거려 몸이 반응하는 대로 어린아이처럼 내지르는, 안팎 구별이 없는 순수욕망의 몸짓과 마음에 도달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해방이 아닐까요?" ==================================== 모퉁이 / 안도현 모퉁이가 없다면 그리운 게 뭐가 있겠어 비행기 활주로, 고속도로, 그리고 모든 막대기들과 모퉁이 없는 남자들만 있다면 뭐가 그립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계집애들의 고무줄 끊고 숨을 일도 없었겠지 빨간 사과처럼 팔딱이는 심장을 쓸어내릴 일도 없었을 테고 하굣길에 그 계집애네 집을 힐끔거리며 바라볼 일도 없었겠지 인생이 운동장처럼 막막했을 거야 모퉁이가 없다면 자전거 핸들을 어떻게 멋지게 꺾었겠어 너하고 어떻게 담벼락에서 키스할 수 있었겠어 예비군 훈련 가서 어떻게 맘대로 오줌을 내갈겼겠어 먼 훗날, 내가 너를 배반해 볼 꿈을 꾸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말이야 골목이 아냐 그리움이 모퉁이를 만든 거야 남자가 아냐 여자들이 모퉁이를 만든 거야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한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 창작 수업 첫 시간이면 학생들에게 북어를 다섯 시간 동안 관찰한 뒤 시를 써오라는 과제를 낸다고 했다. 건성건성 한 학생과 오랫동안 북어를 바라보고 쓴 글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고 했다. 시인이 되는 첫째 조건, 사물을 '자세~~~히'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시를 쓰는 자세는 소심하고 째째하다고 말했다. 좀 더 나은 표현이 없나 고민하면서 수없이 고치기를 반복해서 세상에 내놓기 때문이다. 시 한 편이 태어나는 게 얼마나 난산인지를 알겠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모퉁이를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보았을지 머리에서 되새김 했을지를 생각하면 허투루 읽고 지나칠 수 없다. '모퉁이가 없다면 자전거 핸들을 어떻게 멋지게 꺾었겠어' 라는 표현은 참 좋다. 도시에서는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골목이 사라지고 모퉁이가 사라지고 있다. 피맛골을 없앤 건 모퉁이를 싫어하는 현대 정신이었다. 그놈은 추억과 그리움, 인간적인 따스함까지 통째로 쓸고 가버리는 쓰나미다. ====================================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 김경주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 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네, 그 속에서 하늘하늘한 팬티 한 장 어머니 볼에 문질러보네. 안감이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 하는 무늬였음을 오늘은 그 적멸이 내 볼에 어리네 ==================================== 첫 꿈 / 빌리 콜린스 황량한 바람이 유령처럼 불어오는 밤 잠의 문전에 기대어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서 맨 처음으로 꿈을 꾸었던 사람을, 첫 꿈에서 깨어난 날 아침 그는 얼마나 고요해 보였을까 자음이 생겨나기도 오래전 짐승의 표피를 몸에 두른 사람들이 모닥불 곁에 모여 서서 모음으로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는 아마도 슬며서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 깊은 곳을 내려다보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어떻게 가지 않고도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었단 말인가, 홀로 생각에 잠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돌로 쳐 죽인 뒤에만 만질 수 있었던 짐승의 목에 어떻게 팔을 두를 수 있었던 것일까, 살아 있는 짐승의 숨결을 어찌하여 그리 생생하게 목덜미에 느낄 수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거기, 한 여인에게도 첫 꿈은 찾아왔으리라 그가 그랬듯이 그녀 역시 홀로 있고 싶어 자리를 떠나 호숫가로 갔겠지 다른 것이 있었다면 젊은 어깨의 부드러운 곡선과 가만히 고개를 숙인 모습이 몹시도 외로워 보였을 것이라는 것뿐, 만일 당신이 거기 있었더라면, 그래서 그녀를 보았더라면 당신도 그 사람처럼 호숫가로 내려갔으리라, 그리하여 타인의 슬픔과 사랑에 빠진 이 세상 첫 남자가 되었으리라 첫 꿈은 언제나 존재한다. 지금 우리도 첫 꿈을 꾸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숫가에 내려가면 한 여인이 가만히 고개 숙이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그 여인 역시 꿈을 꾼 뒤 무리에서 떠나 호숫가로 왔으리라. 꿈을 꾸는 사람은 홀로 있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고 꿈을 꾸는 사람은 꿈을 꾸는 사람과 만나게 되는 법이니까.... ==================================== 근 심 / 정애란 색깔이 각각인 신발 한 켤레 제 짝인듯 나란히 놓여있다 어디서부터 잘못 신고 온 것일까 아무리 생각을 꿰맞춰 보려해도 가물가물 거리는 게 엉켜버린 실타래 같다 늦은 저녁을 먹은 사거리 식당에서였을까 취객들이 금빛나무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었는데 아니, 포그니 이불집을 지나 행복 편의점을 지날 때에도 분명 짝이 맞던 신발이었어 다시 들여다봐도 한 짝은 흰색인데 다른 한 짝은 검은 색의 신발이 능청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신발은 꼭 찾아야 하고 입안에선 점점 침이 마르는데 '땔렐레 땔렐레 땔렐레' 출근을 위해 깨우는 핸드폰의 알람소리 생생히 남아있는 근심 한덩어리 ==================================== 역전 이발 / 문태준 때때로 나의 오후는 역전 이발에서 저물어 행복했다 간판이 지워져 간단히 역전 이발이라고만 남아 있는 곳 역이 없는데 역전이발이라고 이발사 혼자 우겨서 부르는 곳 그 집엘 가면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속을 긁어내는 풍경이 생각난다 마른 모래 같은 손으로 곱사등이 이발사가 내 머리통을 벅벅 긁어주는 곳 벽에 걸린 춘화를 넘보다 서로 들켜선 헤헤헤 웃는 곳 역전 이발에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저녁이 살고 있고 말라 가면서도 공중에 향기를 밀어넣는 한 송이 꽃이 있다 그의 인생은 수초처럼 흐르는 물 위에 있었으나 구정물에 담근 듯 흐린 나의 물빛을 맑게 해주는 곱사등이 이발사 ==================================== 바람의 사생활 / 이병률 가을은 차고 물도 차다 둥글고 가혹한 방 여기저기를 떠돌던 내 그림자가 어기적어기적 나뭇잎을 뜯어먹고 한숨을 내쉬었던 순간 그 순간 사내라는 말도 생겼을까 저 먼 옛날 오래전 오늘 사내라는 말이 솟구친 자리에 서럽고 끝이 무딘 고드름은 매달렸을까 슬픔으로 빚은 품이며 바람 같다 활 같다 그러지 않고는 이리 숨이 찰 수 있나 먼 기차소리라고도 하기도 그렇고 비의 냄새라고 하기엔 더 그렇고 계집이란 말은 안팎이 잡히는데 그 무엇이 대신해줄 것 같지 않은 사내라는 말은 서럽고 차가와 도망가려 버둥거리는 정처를 붙드는 순간 내 손에 뜨거운 피가 밸 것 같다 처음엔 햇빛이 생겼으나 눈빛이 생겼을 것이고 가슴이 생겼으나 심정이 생겨났을 것이다 한 사내가 두 사내가 되고 열 사내를 스물, 백, 천의 사내로 번지게 하고 불살랐던 바람의 습관들 되돌아보면 그 바람을 받아먹고 내 나무에 가지에 피를 돌게 하여 무심히 당신 앞을 수천 년 흘렀을 것이다 그 바람이 아직 아직 찬란히 끝나지 않은 것이다 ==================================== 그리움이 맴도는 낙엽 길 / 박소정 그리워서 홀로 걷는 길에 아기 단풍 고운 미소 짓고 은행 단풍 그리움만 남기고 단풍끼리 환하게 멀어집니다 사랑은 가슴에 머물러 팔랑대고 그리움은 추상적인 그림을 그려도 아무 생각없이 명상 길을 걸으면 삶의 모든 그리움이 따라옵니다 단풍은 힘없이 사뿐 떨어져도 한잎의 단풍, 고요한 파문을 일으키고 벚꽃이 몽실몽실 피어준 벚나무에서 벚나무 단풍은 더없이 밝은 메시지를 남깁니다 맑은 정신을 가다듬는 홀로 걷는 길 그리움이란 오붓하게 만나질 못해도 마음으로 다정히 잡아보는 그리움 마음에서 맴돌다 생각을 접어도 그 끝에는 그대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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