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서 / Hermann Hesse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신기하다.
덤불과 돌은 저마다 외롭고,
나무들도 서로를 보지 못한다.
모두가 다 외롭다.
나의 인생이 아직 밝았을 때,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다.
이제 안개가 내리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을 모든 것으로부터
슬그머니 떼어놓는 저 어둠을 ,
전혀 모르는 이는 진정 현명하다
할 수 없다.
안개속을 거니는 것은 신기하다.
산다는 것은 외로운 것,
사람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모두가 다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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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길 / 이근모
걷는다.
내 아버지가 걸어가셨던 그 길을
등뼈 마디마디에 자리 틀고 있는
세월 안으로
걸어 볼 수 있는데 까지 걸어 본다.
지팡이는 저 멀리 산너머에 있지만
그 곳까지 가는데 그 누구도
손 내민 자 없지만
고갯길 사이사이 휘어지고 부러지는
나뭇가지 움켜쥐고
나뭇가지 부러 저도
힘없는 다리는 주저앉지 않는다.
열대야 하얗게 지새는 밤
마실 오는 별님 달님
주머니에 한 아름 꿈을 담아주고저
행복을 담아주고저
아~
땀 흘리는 여름밤
바람도 쉬어가지 않는 여름밤에도
걷고 있는 아버지의 길
눈보라 순백의 대지에
아버지 발자국이 찍히고야
아버지 걸어가신 길이 새하얗다는 걸 알았다.
패인 발자국에 고인 아버지의 눈물이
너무나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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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심
그냥 그렇게 흘러가듯이 사는게야
인생이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모두가 똑 같다면 어떻게 살겠어
뭔지 모르게 조금은 다를 거라고
생각하면서 사는게지
단지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사는게
또 우리네 인생이지
숨가쁘게 오르막길 오르다 보면
내리막길도 나오고
어제 죽을 듯이
힘들어 아팠다가도 오늘은 그런 대로 살만해
어제의 일은 잊어버리며 사는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니겠어
더불어 사는 게 인생이지
나 혼자
동떨어져 살수만은 없는 거잖아
그래 그렇게 사는 거야
거짓없이 친구에게 말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거야
그래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나 혼자 버거워
껴안을 수 조차 없는 삶이라면
적당히 부대끼며 말없이 사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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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 조정숙
나 가끔 친정으로 돌아가면
금세 엄마의 어린 딸이 되어
먼 여행에서 돌아온 것처럼
몸도 마음도 녹신녹신해져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한 일들
그만 까마득해지고
길을 가다 지나쳐 만난 사람처럼
남편 얼굴도 서먹서먹해져서
엄마 손에서 익은 물김치
호록호록 떠먹어가며 밤새도록
친구 같은 수다를 떨었네.
엄마도 참, 고생이 많수
서로 마음을 만지작거리다가
니, 사는 게 그리 호락호락 한 줄 아나
좀 더 살아봐라 내 맘 알끼다
엄마를 관통한 바람이
목적도 없으면서
천천히 나에게 불어오는
내 속엔 작은 엄마가 있어서
가는 허리가 자꾸 허청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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