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

슬픈 청춘의 참담한 비극

intervia 2014. 7. 8. 10:13
      슬픈 청춘의 참담한 비극, 해결책은 없는 걸까?(jire****)14.07.06 자신의 아기를 60만원에 팔아먹은 (정확히는 음성적 방식으로 입양 보낸) 20대 청년의 행위는 그 자체로 반인륜적인 범죄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청년에 대해 비판과 비난을 퍼붓고 있지만, 그 뒤에 자리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살펴보지 않으면 이런 천륜을 부정하는 범죄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성립되기 위해서 취해진 첫 번째 조치가 자본과 토지, 노동을 사고팔 수 있는 것으로 만든데 있다. 이중에서 노동의 판매는 추상적으로 볼 때 노동력의 판매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인간의 판매에 다름 아니다. 노동력이란 결국 인간의 신체를 통해서 발현되는 것이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이는 육체 노동 뿐만 아니라 지적 노동과 감정 노동, 가사 노동이라 해도 다를 것이 없다. 이렇게 인력시장 (보통 기업과 노동자 간에 형성된다)을 통해 노동이 판매 가능하게 되자, 우월적 지위에 있는 자본에 의해 노동력의 질이 결정되고, 임금이란 도구를 이용해 노동 착취가 가능해졌다. 이것이 진화해서 인간 자체에 가격이 매겨지는 일이 가능하게 됐다. 특히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시장경제의 틀 안에 끌어들이는 신자유주의적 통치 메커니즘 (통치의 합리성을 따지는 정치경제학과는 다른 통치술의 문제를 말한다)이 대세가 됨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 즉 생명의 가치에 가격표가 붙게 됐다.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보상금만 확실히 챙겨주면 그만인 것 아니냐는 생각이 보수층에 만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120만 명 정도가 죽음을 당하는 자동차 사고에 비하면 세월호 참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KBS 간부의 말도 이런 맥락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기업의 탐욕과 정부의 무능이 만든 폭력 게다가 인간에게 매겨진 가격표가 형편없이 떨어지는 추세였으니, 세월호 참사가 바로 그러했다. 이제는 국민이고 시민이고 할 것 없이, 그들의 가치가 돈으로 따져 엄청나면 해경이 죽을 각오로 실종자들을 구했을 것이고, 해군은 온갖 특수 장비를 동원해 한 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이런 인명 경시 현상이 일반화가 철없는 20대 아빠로 하여금 자신의 아이를 단돈 60만원에 팔 수 있게 만든 첫 번째의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전 국민에게 생중계되는 세월호 침몰 중에서도 해경과 해군이 단 한 명의 실종자도 구하지 않는 것을 지켜봤을 청년이 자신의 아이를 60만원 받고 입양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리라. 두 번째 구조적 요인은 초고령사회로 들어가면 경제의 원동력이 상실되기 때문에 아이를 낳기만 하면 국민이 키워준다는 정부의 공약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현대의 정치는 국민의 삶 전체(요람에서 무덤까지)를 관리하기 때문에 생명정치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민생정치나 생활정치라고도 한다. 이런 생명정치의 특징은 국민을 인구라는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과 개별 시민으로 관리하는 두 가지 통치술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국민의 삶 전체를 관리하는 통치술의 발전이 상업적 이익과 맞물리면서 성의 해방이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1부1처제를 핵심으로 하는 결혼의 문제를 국가가 법률로 다루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하지만 법의 사각지대가 넘쳐나는 것처럼, 국가와 사회가 성의 해방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들이 대규모로 발생했다. 10대 임신과 불법적인 낙태, 미혼부부 자식들이 증가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일어난 일이며, 국가의 무능력과 무책임, 사회의 부재, 가족의 해체가 이런 패륜적인 사건의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부모가 원치 않는 동거가 문제가 되는 것은, 청춘들이 동거의 결과물인 자식을 키우지 못할 정도로 능력이 없을 때 발생한다. 그렇다고 해서 청년들에게 자식을 키울 능력이 없으면 사랑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동물은 사정 시 발생하는 극한의 쾌락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정기에만 성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인간이란 순간의 쾌락을 기억하고, 그래서 성관계를 거의 평생 동안 한다. 따라서 청춘에게 사랑과 섹스를 하지 말라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자연의 섭리에도 맞지 않다. 섹스를 중심으로 통치 권력이 개인의 삶을 파고들 수 있었던 것도 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인간이란 존재의 특수성과 사회성에 기인한다.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성적 쾌락을 인간의 필수적인 수요로 포장해 소비 확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남녀가 섹스를 하기까지 이래저래 돈이 들어가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섹스를 하는 동안에도 돈이 들어가고, 사후적으로도 돈이 들어가도록 만든다. 통치술의 강화만이 아니라 성의 자유화와 개방화를 통해 관련업체들의 돈벌이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원하지 않는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발생하는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비용의 발생이다. 여기에도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들어간다. 아니, 섹스의 전과정에 걸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성관계의 결과인 아이들의 문제가 현실로 등장하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하루하루가 사랑은 물론, 돈을 필요로 한다. 청춘들이 부모의 역할을 하려면 뼈 빠지게 일해야 하고, 가족의 도움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도움도 필요하다. 만약 이런 도움이 존재하지 않거나, 너무나 미흡하다면 이 땅의 수만은 청년들은 삼포세대를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탈출구가 없다. 청춘들이란 조부모와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하는 한 사회경제적 약자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헌데 청춘을 포함해 인간의 삶에서 사랑을 빼면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특히 자신만의 사랑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성욕을 억제하기 힘든 청춘의 삶에서라면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20세기의 위대한 석학, 푸코가 8년간의 침묵을 깨고 내놓은 저서들의 《성의 역사》 시리즈였던 것도 신자유주의의 폭주 앞에 놓은 인간을 위한 것이었다. 성과 관련된 온갖 제도와 지식, 종교와 도덕, 정치·경제·사회 정책 등을 통해 현대 권력의 기반을 이룬 앎의 의지부터, 그리스 시대의 탁월한 지혜를 찾아가는 쾌락의 활용을 넘어, 생명정치라는 현대의 통치로부터 자유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자기 배려까지, 푸코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해 통치로부터 자유와 삶의 질을 지키는 것이었다.
      삼포세대라는 말 자체가 인류의 경제성장과 과학기술의 진보가 사실은 퇴행의 역사였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노인이나 장애인처럼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돌보는 일들 (사회복지사와 요양사들의 일이 대표적이다)이 저임금 막노동에 가까운 것도 인류가 퇴행하고 있다는 증거다. 국가나 사회에서 인간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아질수록 인류는 짐승 중에서 최악으로 전락한다. 거듭 말하지만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돼야 한다. 국가가 할 일이란 국민을 먹여 살린다는 명분 하에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도록 하는 것만이 아니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한다 한들 국민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노인과 아이들이 천대받고 버려진다면 그것은 국가도 아니고 사회도 아니다. 그것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만이 남아 있는 최악의 정글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청년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제의 도입도 검토해볼 만한 중요한 이유가 된다. 기본소득제가 실시돼고 있었다면 자신의 아이를 단돈 60만원에 팔아먹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보편적 복지라도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마련이니 기본소득제를 활용하는 방안을 이제는 고민해야 할 때이다. 20세 부모가 구조적인 결함에 의해 자신의 아이를 매매하는 일은 정말로 가슴 아픈 사건이며, 인간으로 태어나 쓰레기로 살아가는 필자마저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대의 아픔이자 잔혹한 슬픔이다. 대상이 청춘이던 노인이던, 개인만 욕하지 마라. 개인을 그렇게 몰고 간 구조와 통치의 책임도 함께 따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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